나의 글

여론(輿論)에 대하여

jookwanlee 2021. 6. 3. 12:23

여론(輿論)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하는 판단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는 그것을 무지와 부정(不正)과 무절제의 원천인 속인(俗人)과 우매한 대중의 여론에 맡기곤 한다. ~ 전해지는 소문(所聞)과 속인들의 의견이 바람을 타고 혼돈 중에 밀려와서 우리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아무런 가치 있는 어떤 방향도 잡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미셀 몽테뉴(Michel Montaigne)가 그의 ‘수상록(隨想錄)’에서 한 말인데 특히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최근에 세계 40여 국가를 대상으로 언론의 공정성 신뢰성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꼴찌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국내의 보도는 그대로 믿을 형편이 못되고 세계의 보도와 유 튜브, 페이스 북 같은 SNS 등을 통해 양식 있고 정직한 이들로부터 정보를 듣고 여과하여 현실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어디로 이끌어 갈지를 정해가야 하는 어려운 형편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생각건대 나 자신의 올바르고 확고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을 세워가는 것이 내 인생길에 마치 주춧돌처럼 가장 중요한 바탕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지 않으면 아무리 정확한 정보일지라도 잘못 사용되어 궁극적으로는 해독(害毒)을 끼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할 말씀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인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2장9절에 '아무도 보거나 듣거나 생각조차 못한 것을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두셨다'라고 하였고, 사람의 생각을 그 속에 있는 영(靈)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생각도 하나님의 영(靈)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직 성령(聖靈, Holy Spirit)은 모든 것을 살피시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알아내신다. 하나님은 이 성령을 통해 그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고린도전서 2장10-11절). 그런즉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성령을 받아서 진리이신 하나님과 소통해야하는 것이다.

 

한편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 우리 조상님들은 진리로 나가는 길을 성학(聖學)이란 말로 표현 하곤 하였는데 이에 대해 백강 이경여 선생이 설명한 아래의 말씀은 우리가 진리를 공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맑고 바르게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體)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慾)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利慾)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證驗)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경중을 재제(裁制)하는 일을 거론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신기한 것만 일삼고 고원(高遠)하기를 힘쓰며 몸과 마음에 절실한 생각이 없이 옆으로 굽은 길을 달려간다면, 버려두고 게을리 하는 자와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치(理致)가 이미 밝지 못하니 어찌 매사(每事)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1653년 효종4년 7월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의 상차문(上箚文) 중에서>

 

2021. 6. 3. 이 주 관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길  (0) 2021.06.07
두려워 말라  (0) 2021.06.05
비록 다 지나갈지라도  (0) 2021.06.01
순경(順境)과 역경(逆境)  (0) 2021.05.30
가야할 몇 마일이 남아있다  (0) 2021.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