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어찌할까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二過):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옮기지 마라. 한 번 한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마라” 이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분노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들이 다가온다.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하는 자들을 보며 분노하여 그들의 매장을 뒤엎으며 그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신 적이 있다.
그러나 분노는 그 파괴력이 매우 커서 반드시 조심하고 경계하고 절제해야만 한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대왕에게 임금으로서 분노를 절제할 것을 가장 강조하여 말씀한 바 있는데, 임금의 분노는 그 파괴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반드시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 이치와 법도에 맞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분노를 표출 하는 것은 반드시 진리에 어긋나는 것, 정의와 인륜 도덕을 파괴시키는 행위, 인권과 민주적인 자유를 속박하는 조치들에 국한하여 표출해야 하며, 다른 사사로운 감정에 의한 분노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상대에 대한 사랑과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이를 극복하고 절제해서 적절한 사랑의 방법으로 소통하며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이것이 불천노(不遷怒)일 것이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로는 극도로 분노할 수도 있다. 일터에서 일하면서 그런 상황에 처할 때도 있다. 그렇게 화가 날 때 그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다윗이 망명 생활을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나발이라는 부자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목축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양털을 깎는 날에 사람을 보내어 음식을 좀 나누어주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나발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찾아간 사람들을 모욕했다.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한 다윗이 사람들을 모아 나발을 치기 위해 올라갔다. 큰 살육이 벌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재치와 기지로 다윗이 나발을 죽이지는 않았다.
“장군께서 사람을 죽이시거나 몸소 원수를 갚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도 살아 계시고, 장군께서도 살아계십니다”(사무엘상 25:26)
그녀의 말이 위의 본문이다. “피를 흘려 친히 원수갚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로마서 12:19)고 했다. 어쨌든 분노를 삭이고 아비가일의 제안대로 그대로 돌아간 다윗에게 더 좋은 결과가 있었다. 하나님이 나발을 치셨고 그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화가 날 때 한 순간만 늦추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자.
화가 날 때 나름대로 ‘불천노불이과’와‘아비가일’을 두고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 하자.
2020. 6.11. 이 주 관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나치면 해롭다 (0) | 2020.06.12 |
---|---|
행복은 어디에서 (0) | 2020.06.12 |
난관 뒤에 숨은 하나님의 목적 (0) | 2020.06.11 |
생명의 면류관을 향해 (0) | 2020.06.10 |
겸손과 공경으로 (0) | 2020.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