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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섬기는 이치

jookwanlee 2022. 12. 29. 04:55

하늘을 섬기는 이치

 

고종 41년(1901년) 8월5일에 숭정문(崇政門)에 나아가 조참(朝參)을 행하였다.

 

좌의정 김재찬(金載瓚)이 아뢰기를, “이번 가뭄은 몹시 혹독합니다. ~ 옛날 효묘조(孝廟朝)에 재이(災異)를 만나 구언(求言)하였는데, 고(故) 상신(相臣) 이경여(李敬輿)가 상소하기를, ‘허문(虛文)과 소구(小具)는 하늘을 섬기는 이치가 아닙니다. 정전(正殿)을 피(避)하는 것은 궁금(宮禁)을 엄히 하여 사경(私逕)을 막는 것만 못하고, 감선(減膳)하는 것은 검소한 덕(德)을 숭상하고 쓸데없는 비용을 절약하는 것만 못하며, 날마다 내리는 구언(求言)의 하교는 한 가지 일이라도 실행하는 것만 못하고, 조정에 나아가 애통해 하는 것은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니, 효종께서 매우 기쁘게 가납하셨습니다. 고 상신이 충간(衷懇)을 실다웁게 진달하고 효종이 흡족하게 격언(格言)으로 받아들이셨으니, 어찌 천노(天怒)를 돌이키고 천심(天心)을 감동시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출처 : 조선왕조실록)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산다면 그의 삶에 무슨 가치나 보람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며 그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는 바로 하늘을 섬기는 이치를 알고 이를 충실히 실천해야하는 것이다.

 

그 기준의 하나를 창세기 25장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 형제에게서 찾을 수 있다.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하건대 우선 겉보기로는 형인 에서가 사나이답고 인정 있는 삶이었던 것같이 보이고 동생인 야곱은 속임수를 쓰며 살고 꾀로 살아가는 좋지 않았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편을 들지 않으시고 야곱의 편을 들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성경 본문을 살펴보면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창세기 25장 31절의 말씀으로 미루어 살피건대 에서는 태어날 때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하신 현실에 성실치 못하였다. 그는 맏아들, 장자란 명분을 너무나 가벼이 여겨 동생에게 쉽사리 넘겨주고 말았다. 34절에서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겼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바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태어날 때의 현실을 소중히 여기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마음가짐이다. 동생 야곱은 이런 명분을 지나치리만큼 소중히 여겨 자신이 그 명분을 이어가려고 애셨다.

우리시대에 사람들이 소홀히 하는 문제들 중의 하나가 명분(名分)이란 가치를 소홀히 하는 점이다. 너무나 모두들 이익이나 이권에 관심을 쏟다보니 명분이나 본질을 소홀히 하며 살고 있다. 형 에서가 팥죽 한 그릇이라는 눈앞의 이익에 팔려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하였다가 삶 전체를 그르친 사연을 우리는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형 에서가 겉보기로는 장점이 더 많았던 것 같고 동생 야곱이 단점이 더 두드러진 것 같이 보이면서도 에서의 삶은 실패자로 끝났고 야곱의 삶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앞에서 지적한 대로 에서는 명분을 소홀히 여기는 과오를 범하였음에 비하여 야곱은 명분을 따름에 전심을 다하였다.

둘째로 삶의 목표와 비전을 추구함에 에서와 야곱은 뚜렷하게 달랐다. 에서는 사냥꾼으로써 하루하루를 자신이 좋은 것을 따름에 매여 살았다. 삶에 방향이나 목표를 추구함이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야곱은 달랐다. 야곱은 가치를 추구하는 일에 자신을 던졌다. 그의 성격이나 인격에는 일그러진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투자하여 따를 가치를 찾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일에 자신을 던졌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있는 약점과 결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한다. 야곱이 추구한 삶이 바로 그런 삶이었다. 그가 불모지 루스 땅을 하나님의 집을 뜻하는 벧엘로 고친 것이나 나루터 얍복을 하나님의 얼굴을 뜻하는 브니엘로 바꾼 일들이 이를 말하여 준다. 그리고 그의 삶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승화되어 간 것이 이를 말해 준다.

다음으로 자신의 그늘진 모습을 탈피(脫皮)하여 나가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고자 힘쓰는 도전의식에 대하여 언급코자 한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는 말은 독일의 괴테가 즐겨 쓴 말이다. 산과 들에 나가면 뱀이 벗어 놓은 껍질을 보게 된다. 뱀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껍질을 벗으면서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뱀이 병이 들게 되면 껍질을 벗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뱀은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게 된다.

형 에서도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기는 하나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는 자신의 틀에 갇혀 살았다. 그의 삶은 미래지향적이지를 못하였다. 마냥 현실에 안주하며 살았을 따름이다. 자신을 극복하여 나가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동생 야곱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여 나가는 변화를 추구하였다. 야곱은 현실에 안주하려 들지를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여 자신을 던졌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일생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에 몇 번이나 직면하게 되면서 그때마다 자신을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 나갔다.

끝내는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자신을 변혁시켜 나갈 수 있었다. 창세기 35장의 기록에 의하면 야곱이 젊은 날에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난지 30년 만에 떠나 온 고향 벧엘로 되돌아 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게 하셨다. 야곱은 땅의 사람, 육의 사람을 뜻하는 이름이고 이스라엘은 영의 사람, 하늘의 사람을 일컫는 이름이다. 우리들도 세월 속에서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땅의 사람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자신을 극복 승화 시켜 나가는 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런 도전이 있을 때에 사람답게 사는 길이 열려진다.

 

2022.12.29.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