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리더십으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가복음10:43-44).
이스라엘의 왕 다윗에게는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의 아름다움을 성경은 이렇게 칭찬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사무엘하 14장 25절).” 그러나 압살롬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신이 왕이 되려는 소원을 품었으니, 많은 왕자들 중에서 홀로 높아지려고 한 것이다.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는 아버지를 속이고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였다. 압살롬의 그릇된 소원 때문에 아버지 다윗은 죽을 고생을 했고, 압살롬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제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품은 소원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열두 사도들 중에서 자기들 형제가 좌의정과 우의정을 다 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제자들이 듣고 화를 냈다. “너희들이 1·2등을 다 해먹으면 우리는 뭐하라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들이 품었던 소원은 바른 소원이 아니었으니, 그 결과 동료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렸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지도력을 가르쳤다. 하나님나라의 지도력은 세상의 권력자처럼 권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섬김의 지도력이라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으니 “인자(人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라고 하였다.
그런데 왕정시대인 조선시대에 효종대왕이 백강 이경여 선생을 「대인선생(大人先生)」이라고 높여 부르며 신하를 오히려 섬기는 자세로 대우하며 국정에 임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오늘날 모든 리더들은 반드시 귀감으로 삼아 섬김의 리더십을 배워야 할 것으로 보아 그 기록을 아래에 싣는다.
숙종 33년(1707년) 8월 8일 당시 우의정이던 소재 이이명(李頤命) 선생이 숙종대왕에게 올린 상소문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신의 할아비 이경여(李敬輿)는 효묘(孝廟)께 어수지계(魚水之契)가 있어 일찍이 지극히 원통함이 마음에 있다는 하교가 있었으며, 또 「대인선생(大人先生)」이라고 일컬으셨으니, 단지 신의 집안 자손만이 영광으로 느낄 뿐만이 아닙니다. 이는 황분제전(皇墳帝典)1) 과 함께 같이 천지에 빛나는 것이니, 저하(邸下)께서도 또한 이 의리를 일찍 아시지 않으면 안 됨니다. 등본(謄本)을 올리고자 하오니 써서 내려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하자, 동궁께서 즉시 올리라고 명하시므로 신이 소매 속에서 꺼내어 올렸습니다. 대개 우리 효묘께서 비록 큰 뜻을 품으시기는 하였지만, 밀물(密勿)한 유위(猷爲)2) 외에는 일찍이 문자로써 아랫사람에게 조유(詔諭)하신 적이 없었고, 말년에 와서야 이 하교가 신의 할아비에게 비로소 미쳤던 것입니다. 고(故) 문정공(文正公) 신(臣) 송시열(宋時烈)이 일찍이 신의 할아비의 묘지명(墓誌銘)에 이르기를, ‘「지극히 원통함이 마음에 있다.」는 하교를 유독 공(公)에게만 명백하게 말씀하셨으니, 어찌 성문(聖門)3)의 3천 명 제자 가운데 유독 단목씨 자공(端木氏, 子貢)만이 다른 사람이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던 경우와 같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또 일찍이 ‘지극히 원통함이 마음에 있는데,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至痛在心日暮途遠]’란 여덟 글자를 크게 쓰고 그 아래에 쓰기를, ‘위는 우리 효종 대왕께서 백강(白江) 이상국(李相國)에게 내린 비사(批辭)인데, 원래의 비사에서는 이상국을 「대인선생(大人先生)」이라고 일컬었다.’고 하였으니, 백강은 곧 신의 할아비의 호입니다. 』
[註 1]황분 제전(皇墳帝典) : 삼황(三皇)의 삼분서(三墳書)를 이름.
[註 2]유위(猷爲) : 계획.
[註 3]성문(聖門) : 공자의 문하.
하나님이 그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은 다 같이 귀한 생명이다. 헛된 욕심과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이웃을 섬기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태도이며 참다운 복을 받는 길이다. 교만한 마음은 패망의 선봉(先鋒)으로 마침내 불행을 가져오고 만다. 겸손과 절제는 성령의 열매로 우리를 복된 삶으로 이끌어간다.
2024.10. 6.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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