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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 말고 진리로 만족하며 죽도록 충성하라

jookwanlee 2023. 1. 16. 02:18

염려 말고 진리로 만족하며 죽도록 충성하라

 

I. 염려하지 말라

 

“사흘 전에 잃어버린 나귀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오. 그것은 이미 찾았소.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처럼 원하던 자가 누구요? 바로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아니오?” (사무엘상 9장 20절)

이는 선지자 사무엘이 잃어버린 나귀를 찾고자 찾아온 사울에게 한 말인데, 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승인한 상태였다. 고로 이 말씀은 ‘누구나 하나님의 소명(召命)에 부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물질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모든 필요한 것들이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다 이루어지니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는 선지지 사무엘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6장 31-33절에서 말하기를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소명인 정의(正義)를 위해 죽고자하면 살고 불의(不義)에 기생(寄生)하여 살고자 하면 결국은 죽는다는 것은 하늘의 이치이다. 일찍이 이런 이치를 깨달은 한포재 이건명 선생은 역신들의 모함으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태연하게 절명시(絶命詩)를 읊을 수가 있었는데 이것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지혜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신임사화로 죽임의 화(禍)를 당하면서도 태연하게 올곧은 선비의 길을 걸어 영조대왕 옹립(擁立)에 핵심적 역할을 한 한포재 이건명 선생의 절명시(絶命詩)를 소개한다.

허국단심재 (許國丹心在)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은 여전하니

사생임피창 (死生任彼蒼) 죽고 사는 것은 저 하늘에 맡기노라

고신금일통 (孤臣今日慟) 외로운 신하가 오늘도 애통하니

무면배선왕 (無面拜先王) 선왕을 뵈올 면목이 없구나!

한포재공은 누명(陋名)을 쓰고 죽임을 당하였지만 영조·정조의 부흥의 시대를 열고 추앙받는 충신의 반열에 올랐는데 그 비결은 죽고 사는 것을 저 하늘에 맡기고 의로운 길을 걸어간 데에 있다고 하겠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하늘의 뜻을 따라 의로운 길을 걸어감으로 당당할 수가 있었다.

한포재공과 같은 하나님의 의(義)를 위해 참수형(斬首刑)을 당한 사도 바울(St. Paul)의 마지막 모습도 천국을 바라보며 평안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갔을 것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이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진리의 말씀을 배우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가면 자연히 염려할 일들은 사라지게 된다. 과거를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고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가 있는즉 다가올 죽음까지도 평안한 마음으로 받을 수가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善)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II.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만족하라

 

"여러분이 다시 나를 기억하고 도와 주니,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늘 가져왔던 관심을 표현할 길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처지가 힘들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으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가난을 이겨 낼 줄도 알고, 부유함을 누릴 줄도 압니다.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넉넉할 때나 궁핍할 때나, 어떤 형편에 처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0~13절)

이 본문의 핵심은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이다.' 이는 우리가 올라가야 될 최상의 신앙생활의 경지이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기를 배웠다 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바울은 인생을 살면서 경제문제를 터득한 자족의 원리를 삶의 모든 영역에 확대 했다. 돈이 많다 해서 우쭐하거나 돈이 적다해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마음, 곧 평안하고 만족하는 비결이 있었다. 돈 가지고 꼭 울고 웃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특별히 가르쳐준다.

하나님은 바울만이 이런 삶을 살도록 하실까? 하나님은 바울처럼 우리도 자족하는 걸 배우기를 바라신다. 바울은 너희들의 견본이라고 말씀하신다.

빌립보서 3장 17절을 보면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고 한다. 너희들도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말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선교사들에게 주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지금 세상이 사람의 값을 얼마나 버느냐, 얼마나 좋은 집을 가졌는가로 판단하는 마당에 바울처럼 살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보면 불가능하고 말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가 바울과 같은 인격의 수준을 요구하시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이 바울처럼 만족하는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이 바울과 같은 삶의 태도를 원하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답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즐기면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좀 더 고상하고 높은 삶을 요구하신다.

소유는 잠깐 있다 없어진다. 넓고 편안한 집에 산다고 만족을 주는 게 아니다. 고급차, 은행에 돈 넣어둔 것, 값진 보석, 유명한 의상, 진정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내 뇌에 있는 혈관 하나만 뚫려도 다 놓아야 한다. 이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소유가 많고 적든지 간에 거기에 따라 좌우되는 마음상태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자족은 부유하냐 가난하냐에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인생파고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신비한 경지를 말한다.

바울이 자족의 경지에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부족함이 없다는 인식을 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었다. 능력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졌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의 참모습이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능력을 터득하자.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말씀 2004년 5월 4일 사랑의 교회>

 

III. 죽도록 충성하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장 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은 교회가 연초에 청지기 직분을 줄 때나, 장로나 권사 임직식 때, 교회에서 시상하며 기념패에 `약방의 감초`로 사용되는 요절이다.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흠모할 만하다. 할 수만 있다면 죽도록 충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충성(忠誠)의 사전적 의미는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이라 했다. 충성(忠誠)에 대한 한자풀이를 이렇게 할 수 있다. 충(忠)자는 마음 심(心)에 가운데 중(中)자가 가로지른다. 성(誠)자는 말씀 언(言)변에 이룰 성(成)자로 이뤄진다. 곧 자신이 한 말(言)을 이루는(成) 일에 마음(心)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中)것이 충성(忠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의미의 충성이 방향이 잘못되면, 그 충성이 나라를 망치기도 하고 국민에게 지탄받는 충성이 되기도 한다.

범죄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의 충성심은 놀랄 만하다. 조직폭력배의 충성은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충성을 칭송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충성은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무엇에 충성하라는 것인지를 바르게 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종종 충성하는 사람들로 인해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의 뜻을 바르게 헤아려야 한다.

서머나 교회에 주신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믿음을 지키는 일`에 충성하라는 말씀이다. 신앙에 대한 핍박 속에서도, 교회에 닥친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교훈을 지키며 사는 일에 충성하라는 뜻이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데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주변에는 교리에 매여 충성하며 사랑을 잃는 사람이 있다. 독재자에 충성하면서 국가를 위해 큰 공헌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충성도 있다. 때론 교역자에게 충성하는 교인도 만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충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 중요한 점은 그 충성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대한 충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충성하는 사람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주님,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주님의 뜻에 충성하는데 용기 잃지 않도록 힘을 주시고, 두려움 없이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함께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2장 8-11절)

 

2023. 1.16.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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