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탐욕을 절제하라

jookwanlee 2021. 5. 7. 03:44

탐욕을 절제하라

 

‘경행록’에 이르기를, 삶을 올바르게 보전하려는 사람은 욕심을 적게 하고 몸을 온전히 지키려는 사람은 세상에 이름 내기를 피한다. 욕심을 내지 않기는 쉬우나 이름 내지 않기는 힘들다. 景行錄(경행록)에 曰(왈), 保生者(보생자)는 寡慾(과욕)하고 保身者(보신자)는 避名(피명)이니 無慾(무욕)은 易(이)이나 無名(무명)은 難(난)이니라. 이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정기편(正己篇)에 나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지 못하시는 기도가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과식(過食)하는 사람들의 위장을 지켜 주시지 못하신다는 것이요, 둘째는 과로(過勞)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지 못하신다는 것이요, 셋째는 과욕(過慾)을 품는 사람들의 은행구좌를 지켜 주시지 못하신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세상에 이름을 내고자하는 것도 욕심이니, 그러니 모름지기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세상의 것들에 대한 탐욕(貪慾)을 절제하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이를 성학(聖學)이라고 말씀하며 효종임금에게 이 마음을 닦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다음과 같이 주문한 바가 있다.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맑고 바르게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體)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慾)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證驗)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

 

~ 효종4년(1653년) 백강 이경여 선생이 올린 재변(災變)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건의사항 중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情慾)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요한1서 2장15-17절.

 

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기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銅綠)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장19-20절)‘라고 하며 이 세상 것들에 대한 탐욕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주문하였다.

 

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의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은 그저 지나가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결국 그것들을 탐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해로움과 허망함을 남겨주는 면들이 있는 것임을 기억하자.

 

2021. 5. 7.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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