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한 말 중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말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속에는 다양한 뜻이 내포돼 있는데, 일반적으로 말하면 너의 분수(分數)를 알아 분수대로 살아가란 뜻으로 해석된다. “너 자신을 알라”에서 우리는 철학적 의미만 추구해서는 안 되며, 실제의 삶에 적용을 시켜서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촉매의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자신을 안다’ 함은 크게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부터, 작게는 자신의 적성과 현실 및 이상을 알아두는 것이 구체적으로 자신을 아는 첫 걸음이라 하겠다.
이에 관련하여 일찍이 주(周)나라의 강태공(姜太公)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강태공이 말하기를 [太公 曰(태공 왈)]
남을 알고 싶으면 먼저 나 자신을 알라[欲量他人 先須自量(욕량타인 선수자량)]
남을 해하는 말은 도리어 자신을 해하는 일이니[傷人之語 還是自傷(상인지어 환시자상)]
피를 남에게 뿌리면 먼저 자기 입이 더러워 진다.[含血噴人 先汚其口(함혈분인 선오기구)]
<출처는 ‘명심보감(明心寶鑑)’으로 ‘含血噴人(함혈분인)’은 입에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어대는 것을 뜻한다.>
생각건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안분지족(安分知足)하고 안분낙도(安分樂道)하라는 말로 들린다. 하늘이 내게 주신 분복(分福)과 본분을 족하게 여기고, 사람으로서 걸어가야 할 바른 길로 사람의 도리(道理)를 다하며 살면서 이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지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참된 복은 세상의 잣대로는 평가될 수가 없으며 오로지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의 잣대로만 평가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있고 그에 합당하게 여러 가지 여건을 나에게 마련해 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가치 있는 일을 누구에게 맡기시지 전에 반드시 먼저 그를 고통과 고난을 통하여 단련시키는 과정을 거치신다.
그러므로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이 말한 “재물, 지위, 명예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경계하라. 언젠가 그대가 이들에 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사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그대는 그대가 얼마나 가난한 존재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경고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명리(名利)의 속세(俗世)를 넘어서는 고결한 삶의 자세에 대해 ‘중용(中庸)’에서는 말하기를 “군자는 중용에 의지하여 세상에서 숨어있어 알려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으니 이는 오직 성자(聖子)라야 그렇게 할 수 있다[군자(君子)는 의호중용(依乎中庸)하야 돈세불견지이불회(豚世不見知而不悔)하나니 유성자능지(唯聖者能之)니라]<중용(中庸) 2편 10장>.”라고 하면서 그러한 인물을 성인(聖人)이라고 까지 추켜세웠다.
같은 맥락에서 사도 요한(John the Apostle)은 요한1서 2장 15-17절에서 말하기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참으로 일생을 두고 명심해야할 말씀이다.
2023.11.21.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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