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과 고통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즐거움과 기쁨은 고통이나 고난을 격은 후에 자기의 뜻밖에 일어나거나 자기의 뜻에 거슬려 일어나며, 심지어 자기 스스로 원해서 당하는 고통이나 고난일지라도 한번은 고통이나 고난을 격은 후에야 비로소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게 된다.”<어거스틴(St. Augustine), ‘참회록’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과 고난이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기 위한 선결요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나아가 고통과 고난은 우리들이 영적, 인격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가 몸소 체험한 바에 따라 그만큼 성장하며 그만큼 더 깊게 세상을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골짜기가 깊으면 산은 높게 마련인 것이다. 또한 고통과 고난은 가장 소중한 이웃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이며 가장 확실한 방도이기도 하다.
1885년 조선에 온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의 기도문이 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천신만고 끝에 태평양을 건너 조선에 왔다.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다. 절망, 가난, 인습에 매어 있는 모습이다. 고통이 고통인 줄 모르는 자들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는 것이 힘들다. 조선 남자의 속셈이 보이지 않는다. 조정의 내심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는다. 우리를 ‘서양귀신’이라고 하며 의심하고 경계한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이질적인 상황에서 조선인들의 마음을 얻을 길은 멀어 보였다. 그러다가 경북 지방에 콜레라가 돌았다. 모두 피해 도망칠 때, 교회와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사람들을 구해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잃고 난 후에는 제국주의와 싸우는 교회가 되었다. 민족과 함께 울며 민족의 고난에 동참했다. 한국 기독교는 출발부터 민족 기독교였다. 애국 기독교였다. 독립선언 민족지도자 33인 중 기독교인이 16명이었다. 천도교 15명, 불교 2명이었다. 애국 운동의 핵심에 기독교가 있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조선인들의 마음을 얻었다. 고통과 고난 속으로 들어간 것이 민족의 마음을 얻는 통로가 된 것이다.
어디를 가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고통과 고난과 희생 속으로 들어가자. 가장 힘든 곳으로 가자. 그곳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기회의 땅이 된다. 희생의 장소, 고통과 고난의 장소를 향해 자기 발로 걸어가자. 그리해야 사람의 중심인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고통과 고난은 신비롭다. 고통과 고난에 동참하는 중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알게 된다. 고통과 고난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시켜준다. 고통과 고난은 사람과 하나님의 마음도 연결 시켜준다. 고통과 고난 없이는 껍데기만 추구하는 인생이 되고 만다. 고통과 고난은 마음을 얻게 하는 기회의 땅이다.
지금 우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심각한 전산조작 등의 방법에 의한 부정선거로 인하여 자유를 잃고 공산·전체주의로 넘어갈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다. 자유는 목숨과 같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이를 도모·실행하고 방조한 악인들과 싸우는 고통과 고난의 자리로 들어가서 온힘을 다해 싸우자. 이런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들은 결국 가장 큰 보람에 찬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23.11.21.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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