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부여고도

jookwanlee 2022. 1. 11. 09:49
扶餘古都(부여고도)
포암 李師命(이사명)

往事皆陳迹 山川尙不迷(왕사개진적 산천상불미)
衣冠晨月上 花草野禽啼(의관신월상 화초야금제)

지나간 온갖 일은 자취 뿐인데
산과 물만 예런듯 그대로 있네

새벽달 푸른 아래 오르느라니
우거진 풀꽃 속에 새들만 우네…


* 이사명(師命) [1647(인조 25)∼1689(숙종 15)]

자는 백길(伯吉), 호는 포암(蒲庵). 이민적(敏迪)의 장남이다. 원종공신 2등에 올랐으며 원훈 완녕군(完寧君)이 되었다. 1673년(현종 14) 진사시에 장원하고, 1680년(숙종 6) 창릉참봉을 지냈다. 같은 해 문과에 장원하여 정언을 거쳐, 그 후 사간원 · 홍문관에 있다가 전라도 관찰사, 형조판서 · 병조판서를 지내다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공훈 원훈이 병삭되었다. 그 후 완전 복관되었으나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로 다시 추탈되었다가 1725년(영조 1)에 복관되었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임천면 옥곡리 초막동 유좌에 있다. 배위는 정부인 안정나씨와 정부인 임천조씨이다. 정부인 임천조씨는 부군 완녕군과 숙질인 이이명과 아들 이희지가 귀양을 가자 통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1722년(경종 2)에 순사하여 열녀정려(烈女旌閭)가 내려졌다.

* 숙종 6년(1680년) 6월9일, 글재주가 뛰어난 전적 이사명의 발탁을 명하다

비망기(備忘記)에,

“전적(典籍) 이사명(李師命)은 문학으로 발탁 임용하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묘당(廟堂)의 여러 신하들이 이미 특별히 천거했을 뿐만이 아니고, 전일 감제시(柑製試) 및 어제의 정시(庭試)에서 연이어 장원을 했으니, 역시 글재주가 특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겠다. 이러한 사람은 경연(經筵) 석상에 발탁해 두고 고문(顧問)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의 도당 홍록(都堂弘錄) 때에는 다 같이 권점(圈點)하여 재주 있는 사람이 누락되었다는 한탄이 없도록 하라.”하였다.

이 뒤에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차자를 올려,

“지명하여 하교(下敎)하고 권점(圈點)을 찍도록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의정부(議政府)·관각(館閣)·전조(銓曹)에서 같이 모여 권점하는 것은 사체(事體)가 중대하기 때문이다.’란 명령이 있는데, 성상(聖上)께서 지휘를 미리 내리시게 되면 뒷 폐단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 전하(殿下)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더욱 길러서 성취시킴이 마땅하지, 갑자기 비상한 거조를 시행하여 바깥 의논이 헐뜯게 해서는 안됩니다.”하니, 답하기를, “경(卿)의 차자 가운데 국가를 위하여 뒷 폐단을 염려하는 마음이 글의 표면에 넘쳐흐른다. 마땅히 명을 도로 가두겠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

[註]도당 홍록(都堂弘錄) : 도당록(都堂錄)과 홍문록(弘文錄). 홍문록은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수찬(修撰)을 임명하기 위한 1차 선거(選擧) 기록이고, 도당록은 2차 선거 기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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