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2
1655년(효종7년) 5월 정언 이민서(李敏敍)가 효종에게 상소한 글이다. 삼백 하고도 오십 여년 전의 글인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실정에 날려 휘적거려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나라에 이러한 신하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신하의 이러한 직소(直訴)에도 아름답게 여기는 임금이 있다면...... 자기 주머니 채우기 바쁘고, 국민을 개밥의 도토리보다도 못하게 여기며, 앞에 선 자로서의 책임의식은 눈곱만큼도 없고, 인간으로서· 정치인으로서의 기본 자질은 물론 한 나라의 대표로서의 자존심과 긍지도 없는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 읽어주어 최면 들게 할 수만 있다면 목에 피가 날 정도로 읽고 또 읽으련만. 이렇게 아름답고 눈물이 날 정도로 멋진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려오고 울화가 치미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정언(正言) 이민서(李敏敍)의 상소문
“나라의 일이 날로 위태해지고 백성이 날로 야위어 갑니다. 위태하여도 구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되고, 야위어도 돌보지 않으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납간(納諫)과 보민(保民)에 관한 말씀을 먼저 아뢰어 보겠습니다.
공론은 국가의 원기(元氣)이고 간쟁(諫諍)은 공론의 근본입니다. 대개 천하의 의리는 그지없고 한 사람의 재식(才識)은 한계가 있으니, 남과 나로 가르고 공과 사로 나눈다면 어찌 천하의 착한 사람을 오게 하여 천하의 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람이란 겁내는 자는 많으나 굳센 마음을 가진 자는 적고 무른 자는 편안하나 곧은 말을 하는 자는 위태합니다. 임금이 너그러이 용납하고 틔어 이끌어서 할 말을 다하는 기개를 기르고, 의심 없이 들어서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지 않는다면, 누가 지극히 위험한 것을 범하고 지극히 어려운 것을 행하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는 오만하게 스스로 거룩하게 여기고 홀로 총명을 행하며 한세상을 하찮게 여기고 뭇 신하를 깔보아 대신을 종처럼 기르고 대간을 개와 말처럼 대하십니다. 분주히 종사하되 뜻에 따를 뿐이고 어기지 못하니 종이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속박되어 달리되 울면 쫓겨나니 개와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얼굴에 잘난 체하는 기색이 나타나고 말이 편벽하여 남을 용납하지 않아 한 마디 말이라도 맞지 않으면 물리쳐 쫓는 일이 계속되므로, 대소 신하가 허물을 바로잡기에 겨를이 없고 머리를 감싸쥐고 발을 포개면서 두려워 삼가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생각하건대, 임금과 신하 사이가 현격하기는 하나 정의(情義)를 서로 보전하고 예법(禮法)을 서로 유지하는 것인데, 초개처럼 여기기만 한다면 어찌 국사(國士)로서 보답하기를 요구하겠습니까. 더구나 문사(文士)· 대부(大夫)는 임금이 심복으로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조종조에서는 매우 가까이 하는 예우를 하셨으니, 세종(世宗)· 성종(成宗) 때의 옛일에서 징험할 수 있습니다. 선조(宣祖)께서 이어받아 배양에 더욱 힘쓰셨는데 나라를 재건한 공적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에 힘입었습니다.
신은 오늘날 가까이하여 믿는 자가 과연 어느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랜 나라에 친신하는 신하가 없어 심복으로 의지할 데가 없고 일을 맡겨도 통괄함이 없습니다. 벌떼처럼 일어나는 젊은이만 취하여 모아내는 일을 구차히 쾌하게 여기어 조정의 대체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원기를 해치니, 전하께서 취사를 그릇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일에는 신하를 대우하는 예가 더욱 박하여 가두고 매 때리는 것을 가벼운 벌로 여기고 차꼬가 관원에게 두루 미치고 오라가 고관에게까지 미칩니다. 사기가 꺾여 잡류가 횡행하고 염치가 아예 없어져 명절(名節)이 땅을 쓴 듯이 없으니, 국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언로(言路)가 통하지 않는 것은 괴이할 것도 못됩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어질고 충실한 신하에게 심복을 맡기고 정직하고 간쟁하는 신하에게 이목을 붙여서 정성을 미루어 그들에게 맡기고 자기를 굽혀서 말을 들어 임금의 도리가 아래로 통하고 곧은 말이 날마다 들리게 하시지 않습니까.
《서경書經》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고 전(傳)에‘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서 왕이 되는 것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하였습니다.
예전부터 이제까지 백성이 편안하지 않고도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신이 오늘날의 조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정령(政令)과 베푸는 일에 조금이라도 백성을 편안하게 할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명(敎命)이 내려질 때에 조금이라도 홀아비나 홀어미를 가엾이 여기는 뜻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하의 뭇 신하 중에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에 관한 말을 어전에서 아뢰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경외(京外)의 신하 중에 전하의 백성이 유랑하여 시달리는 정상을 대궐에 아뢰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슬픈 우리 백성이 한 해동안 내내 고생하며 근력을 다하여 조세를 바쳐도 힘이 모자라므로 몹시 근심하면서 오히려 전하께서 조금이라도 덕의(德意)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이를 돌보지 않고 바야흐로 무익한 일에 뜻을 기울이시니, 독책(督責)하는 자는 잔혹한 짓을 자행하고 재능을 뽐내는 자는 남보다 더하여 귀염을 사려고 힘씁니다.
추쇄(推刷)는 작은 일인데 거조(擧措)가 너무 엄중하고 과조(科條)가 너무 엄밀하며, 염초(焰硝)를 굽는 것은 말단의 일인데 나라의 반이 소요하고 갇힌 사람이 옥에 가득합니다. 서울 군사가 먹는 것은 날로 늘어 가고 경창(京倉)의 곡식이 축나는 것은 날로 많아집니다. 나라의 큰일이라면 오히려 핑계할 수 있겠으나, 한 궁가에서 쓰는 것이 수 백만금이나 되고 사사로운 자봉 (自奉)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니므로 고혈은 이미 다 짜냈고 잗단 이익까지 죄다 다툽니다.
법을 세워 넌지시 빼앗고 판매에 세를 매겨 교묘히 거두어 들이니, 전하께서 재능과 심산心算이 있는 신하를 얻으시더라도 눈앞의 일만 처리한다면 또한 임금이 재물을 다스려 풍족하게 하는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신은 원하건대 전하께서 근본을 맑히고 악의 근원을 막되 백성을 아끼는 것은 절용(節用)에서 시작하고 절용은 생약(省約)에서 시작하여 궁중의 용도(用度)와 군국(軍國)의 모든 수용(需用)을 다 조종 때의 옛 규례와 같이 하소서.
재물이 한없이 들어가는 것을 조금 멈추고 국가의 정항(正項)인 공납(供納)만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사치의 해독은 천재(天災)보다 심한데, 말속(末俗) 이 이미 투박해져서 참람하여도 금하지 않으니, 몸소 거친 옷을 입는 교화를 숭상하여 사치한 풍속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대저 오래 쇠퇴한 데에서 약세를 만회하여 중흥의 큰 공적을 세우는 것이 어떠한 사업인데 터덜터덜 느릿이 걸어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는 사의(私意)를 구차히 쾌하게 하고 대계(大計)에 소홀히 하여, 본심을 간직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허물을 듣기 싫어하고 일을 하는 데에는 먼저 백성의 재물을 다 씁니다.
잗단 오락에 빠져 금원(禁苑)이 놀이를 구경하는 마당이 되고 사화(私貨)를 불려 내사(內司)가 도피하는 자를 모이게 하는 수풀이 됩니다. 인척을 높여서 관방(官方)이 어지럽고 희노(喜怒)를 경솔히 써서 상벌이 어지러우며, 아첨이 풍속이 되어 사신(私臣)이 등용되고 이익을 일으키는 것이 날로 성하여 덕을 숭상하는 것이 쇠퇴합니다.
깊은 궁중에서 한가히 계시는 동안을 신이 아는 바가 아니나 가무와 여색, 술이 또한 어찌 반드시 없으리라고 보증하겠습니까. 뵙건대, 전하께서는 불세출의 자질로 큰일을 할 때가 되었고 만승(萬乘)의 자질을 가지고 여러 대를 이어온 기업(基業)을 이어 받으셨으므로 비상한 공적을 머지않아 기대할 수 있는데, 지(志)가 기(氣)에 빼앗기고 의(義)가 이(利)에 가리워서 지사(志士)가 해체되고 백성이 실망하게 하십니다.
전국 때 말세의 임금이 단단히 마음먹고 오래 생각하여 세운 것이 있었던 것만 못하시니,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하였는데, 상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
< 조선왕조실록에서 >
해질녁 풍경소리 소혜, 네이버 블로그
1655년(효종7년) 5월 정언 이민서(李敏敍)가 효종에게 상소한 글이다. 삼백 하고도 오십 여년 전의 글인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실정에 날려 휘적거려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나라에 이러한 신하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신하의 이러한 직소(直訴)에도 아름답게 여기는 임금이 있다면...... 자기 주머니 채우기 바쁘고, 국민을 개밥의 도토리보다도 못하게 여기며, 앞에 선 자로서의 책임의식은 눈곱만큼도 없고, 인간으로서· 정치인으로서의 기본 자질은 물론 한 나라의 대표로서의 자존심과 긍지도 없는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 읽어주어 최면 들게 할 수만 있다면 목에 피가 날 정도로 읽고 또 읽으련만. 이렇게 아름답고 눈물이 날 정도로 멋진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려오고 울화가 치미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정언(正言) 이민서(李敏敍)의 상소문
“나라의 일이 날로 위태해지고 백성이 날로 야위어 갑니다. 위태하여도 구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되고, 야위어도 돌보지 않으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납간(納諫)과 보민(保民)에 관한 말씀을 먼저 아뢰어 보겠습니다.
공론은 국가의 원기(元氣)이고 간쟁(諫諍)은 공론의 근본입니다. 대개 천하의 의리는 그지없고 한 사람의 재식(才識)은 한계가 있으니, 남과 나로 가르고 공과 사로 나눈다면 어찌 천하의 착한 사람을 오게 하여 천하의 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람이란 겁내는 자는 많으나 굳센 마음을 가진 자는 적고 무른 자는 편안하나 곧은 말을 하는 자는 위태합니다. 임금이 너그러이 용납하고 틔어 이끌어서 할 말을 다하는 기개를 기르고, 의심 없이 들어서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지 않는다면, 누가 지극히 위험한 것을 범하고 지극히 어려운 것을 행하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는 오만하게 스스로 거룩하게 여기고 홀로 총명을 행하며 한세상을 하찮게 여기고 뭇 신하를 깔보아 대신을 종처럼 기르고 대간을 개와 말처럼 대하십니다. 분주히 종사하되 뜻에 따를 뿐이고 어기지 못하니 종이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속박되어 달리되 울면 쫓겨나니 개와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얼굴에 잘난 체하는 기색이 나타나고 말이 편벽하여 남을 용납하지 않아 한 마디 말이라도 맞지 않으면 물리쳐 쫓는 일이 계속되므로, 대소 신하가 허물을 바로잡기에 겨를이 없고 머리를 감싸쥐고 발을 포개면서 두려워 삼가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생각하건대, 임금과 신하 사이가 현격하기는 하나 정의(情義)를 서로 보전하고 예법(禮法)을 서로 유지하는 것인데, 초개처럼 여기기만 한다면 어찌 국사(國士)로서 보답하기를 요구하겠습니까. 더구나 문사(文士)· 대부(大夫)는 임금이 심복으로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조종조에서는 매우 가까이 하는 예우를 하셨으니, 세종(世宗)· 성종(成宗) 때의 옛일에서 징험할 수 있습니다. 선조(宣祖)께서 이어받아 배양에 더욱 힘쓰셨는데 나라를 재건한 공적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에 힘입었습니다.
신은 오늘날 가까이하여 믿는 자가 과연 어느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랜 나라에 친신하는 신하가 없어 심복으로 의지할 데가 없고 일을 맡겨도 통괄함이 없습니다. 벌떼처럼 일어나는 젊은이만 취하여 모아내는 일을 구차히 쾌하게 여기어 조정의 대체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원기를 해치니, 전하께서 취사를 그릇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일에는 신하를 대우하는 예가 더욱 박하여 가두고 매 때리는 것을 가벼운 벌로 여기고 차꼬가 관원에게 두루 미치고 오라가 고관에게까지 미칩니다. 사기가 꺾여 잡류가 횡행하고 염치가 아예 없어져 명절(名節)이 땅을 쓴 듯이 없으니, 국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언로(言路)가 통하지 않는 것은 괴이할 것도 못됩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어질고 충실한 신하에게 심복을 맡기고 정직하고 간쟁하는 신하에게 이목을 붙여서 정성을 미루어 그들에게 맡기고 자기를 굽혀서 말을 들어 임금의 도리가 아래로 통하고 곧은 말이 날마다 들리게 하시지 않습니까.
《서경書經》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고 전(傳)에‘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서 왕이 되는 것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하였습니다.
예전부터 이제까지 백성이 편안하지 않고도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신이 오늘날의 조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정령(政令)과 베푸는 일에 조금이라도 백성을 편안하게 할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명(敎命)이 내려질 때에 조금이라도 홀아비나 홀어미를 가엾이 여기는 뜻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하의 뭇 신하 중에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에 관한 말을 어전에서 아뢰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경외(京外)의 신하 중에 전하의 백성이 유랑하여 시달리는 정상을 대궐에 아뢰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슬픈 우리 백성이 한 해동안 내내 고생하며 근력을 다하여 조세를 바쳐도 힘이 모자라므로 몹시 근심하면서 오히려 전하께서 조금이라도 덕의(德意)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이를 돌보지 않고 바야흐로 무익한 일에 뜻을 기울이시니, 독책(督責)하는 자는 잔혹한 짓을 자행하고 재능을 뽐내는 자는 남보다 더하여 귀염을 사려고 힘씁니다.
추쇄(推刷)는 작은 일인데 거조(擧措)가 너무 엄중하고 과조(科條)가 너무 엄밀하며, 염초(焰硝)를 굽는 것은 말단의 일인데 나라의 반이 소요하고 갇힌 사람이 옥에 가득합니다. 서울 군사가 먹는 것은 날로 늘어 가고 경창(京倉)의 곡식이 축나는 것은 날로 많아집니다. 나라의 큰일이라면 오히려 핑계할 수 있겠으나, 한 궁가에서 쓰는 것이 수 백만금이나 되고 사사로운 자봉 (自奉)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니므로 고혈은 이미 다 짜냈고 잗단 이익까지 죄다 다툽니다.
법을 세워 넌지시 빼앗고 판매에 세를 매겨 교묘히 거두어 들이니, 전하께서 재능과 심산心算이 있는 신하를 얻으시더라도 눈앞의 일만 처리한다면 또한 임금이 재물을 다스려 풍족하게 하는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신은 원하건대 전하께서 근본을 맑히고 악의 근원을 막되 백성을 아끼는 것은 절용(節用)에서 시작하고 절용은 생약(省約)에서 시작하여 궁중의 용도(用度)와 군국(軍國)의 모든 수용(需用)을 다 조종 때의 옛 규례와 같이 하소서.
재물이 한없이 들어가는 것을 조금 멈추고 국가의 정항(正項)인 공납(供納)만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사치의 해독은 천재(天災)보다 심한데, 말속(末俗) 이 이미 투박해져서 참람하여도 금하지 않으니, 몸소 거친 옷을 입는 교화를 숭상하여 사치한 풍속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대저 오래 쇠퇴한 데에서 약세를 만회하여 중흥의 큰 공적을 세우는 것이 어떠한 사업인데 터덜터덜 느릿이 걸어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는 사의(私意)를 구차히 쾌하게 하고 대계(大計)에 소홀히 하여, 본심을 간직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허물을 듣기 싫어하고 일을 하는 데에는 먼저 백성의 재물을 다 씁니다.
잗단 오락에 빠져 금원(禁苑)이 놀이를 구경하는 마당이 되고 사화(私貨)를 불려 내사(內司)가 도피하는 자를 모이게 하는 수풀이 됩니다. 인척을 높여서 관방(官方)이 어지럽고 희노(喜怒)를 경솔히 써서 상벌이 어지러우며, 아첨이 풍속이 되어 사신(私臣)이 등용되고 이익을 일으키는 것이 날로 성하여 덕을 숭상하는 것이 쇠퇴합니다.
깊은 궁중에서 한가히 계시는 동안을 신이 아는 바가 아니나 가무와 여색, 술이 또한 어찌 반드시 없으리라고 보증하겠습니까. 뵙건대, 전하께서는 불세출의 자질로 큰일을 할 때가 되었고 만승(萬乘)의 자질을 가지고 여러 대를 이어온 기업(基業)을 이어 받으셨으므로 비상한 공적을 머지않아 기대할 수 있는데, 지(志)가 기(氣)에 빼앗기고 의(義)가 이(利)에 가리워서 지사(志士)가 해체되고 백성이 실망하게 하십니다.
전국 때 말세의 임금이 단단히 마음먹고 오래 생각하여 세운 것이 있었던 것만 못하시니,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하였는데, 상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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