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경향정중심(眞源更向靜中尋) 진리의 근원을 고요한 가운데서 찾으리라
회재 이언적(李彦迪) 선생은 아래의 ‘관심(觀心)’이란 詩에서 진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마음의 중요성을 노래하였다.
공산중야정관금(空山中夜整冠襟) 빈산 한밤중에 홀로 옷깃 바로하고 앉았으니
일점청등일편심(一點靑燈一片心) 한점 푸른 등불은 한 조각 마음과 같구나
본체사종월처험(本體巳從月處驗) 본체야 세상에서 이미 경험 하였으니
진원경향정중심(眞源更向靜中尋) 진리의 근원을 고요한 가운데서 찾으리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요한복음 8장:32절. 진리를 찾아 배우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참된 행복일 진대, 이처럼 우리가 고요한 가운데 진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길에 유념해야 될 바를 생각하여본다.
첫째,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는 배움의 자세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옛것을 익히어서 새것을 안다는 말인즉 옛것을 익힘으로서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과 도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다.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가 말씀하기를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면 가히 이로써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한 것을 말한다. ‘온고이지신’이란 말은 ‘중용(中庸)’에도 나오거니와 한나라의 정현은 그 중용에 나오는 글에 주(註)를 달아 온(溫)은 읽어서 익힌다는 뜻으로 처음 배운 것을 익힌 뒤에 때때로 반복하여 익히는 것을 "온고(溫故)"라고 한다고 했다.
둘째, 자기 생명을 걸고 정진할 필요가 있다.
사계 김장생 선생이 일찍이 율곡 이이 선생에게 묻기를 “선생께서 국사(國事)를 담당하실 때에 만약 지극히 어려운 곳에 도달하면 장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율곡이 대답하기를 “죽음으로써 이을 뿐이다. 학문 또한 그러하니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것은 논의할 것이 아니다. 마땅히 온 힘을 다해서 죽은 뒤에야 그만둘 뿐이니라.”라고 하였다. (‘사계유고’ 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학문은 인격을 갈고 닦아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말한다.
셋째, 포기하지 말라, 실패는 자가가 포기 할 때만이 실패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실패'라고 여기는 것은 하고 싶은 일에서 실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때의 실패란 정금(正金)이 되기 위해 단련하는 과정이며, 성공으로 가는 길에서 지불하는 수업료일 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많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포기할 때 자신이 성공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모른다” ~ 토마스 A. 에디슨.
넷째, 여백(餘白)을 두고 정진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철학자 러셀(Bertrand Russel)이 쓴 글에 ‘Praise of Idleness’란 제목의 책이 있다. "게으름의 예찬"이라 번역된다. 그 주된 내용은 사람이 약간 게으른 듯 여유가 있을 때에 오히려 창조적인 사람이 되고, 빈둥빈둥할 때에 상상력이 솟아올라 인류에 유익을 주는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정신세계를 풍성하게 하는 문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게으름뱅이 같은 사람들에 의하여 창출되었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식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을 떠는 사람들에 의하여 인류문화가 발전하여 온 것이 아니라 하였다.
동양화가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주요한 원인은 그 여백이 가져다주는 운치(韻致)있는 상상력에 있다.
다섯째, 주변 사람들의 이목(耳目)에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별의별 이유로 말하기 때문에 새겨들을 바가 못 된다. 오직 인류역사에 변치 않는 성현(聖賢)들의 말씀을 깊게 새겨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장8절.
"세상에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사는 것은 쉽다. 홀로 살면서 스스로의 의견을 좇는 것도 쉽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군중의 한복판에서 고독 가운데 독자성(獨自性)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자다“ ~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견고한 내면세계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며 유일한 과제가 될 때 우리는 이 심오한 원칙을 배우게 되었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진리를 깨닫고 배우면 반드시 실천하도록 노력하라. 실천이 없는 배움은 참된 배움이 못된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福)을 받으리라” ~ 야고보서 1장25절.
근래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직자(聖職者)들이 우리나라에 거세게 불고 있는 공산주의, 전체주의의 태풍과 부정선거 앞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것을 보고 참담(慘憺)한 마음을 금(禁)할 수가 없다. 반면에 지난 11월3일 미국 대통령선거에서의 부정행위들이 발견되자 전국적으로 이들을 밝히고 바로잡으려고 발 벗고 나서는 미국 국민들을 보고 부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2020.12. 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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