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맺기
인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수많은 관계들(relationships)의 집합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모형제와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다양한 숫한 인간들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등등...
이와 관련하여, 불가(佛家)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인연(因緣)을 함부로 맺지 말고 진실한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하고 맺으라고 경고하고 있다. 법정스님의 경고의 말을 들어보자.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 된다. 옷깃을 한 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한편으로 이와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들에게 준 대사명(大使命,The great Commission)은 바로 세상에 나가 참된 친구를 만드는 것에 관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마태복음 28장19절에서 제자들에게 대사명(大使命)을 주면서 말하기를 ‘세상에 나가라 그리고 뭇 세상 사람들을 사도(제자)로 만들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그 스스로의 삶 속에서 먼저 상대방을 친구로 만들지 않고는 사도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도를 만들려면 먼저 상대방과 참된 친구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호간에 공통되는 부분들을 찾아내어 발전시키는 것으로 이 공통되는 부분에서 상호간의 신뢰는 싹이 트며 이를 바탕으로 참다운 친구관계로 발전해갈 수가 있다. 예컨대 삶의 목표와 희망사항, 가치관, 기뻐하는 일과 슬퍼하는 일 등 에서의 공감이 상호 신뢰하는 참된 친구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 존 피셔(John Fisher, Saddleback Church)
인간 상호간에 그 삶의 핵심적인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아 나눔으로부터 상호 신뢰는 싹트고, 그로부터 진정한 우정은 싹트고 이 진정한 우정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의 목적과 사명을 같이 나눌 수가 있다는 것, 인생의 참된 동반자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건대 부부(夫婦)의 관계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부부는 그 영혼과 정신과 육신을 모두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바람직할 것인데 인생의 핵심적인 영역에서 서로 공감할 수가 없다면 좋은 부부관계는 이루어 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하며, 상대방의 자라온 과정까지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라온 환경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는 없고 그의 생각에 음으로 양으로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생각건대 지도자와의 관계, 조직이나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헌법정신이나 국민들이 추구하는 바와는 동떨어진 사상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을 뽑으면 그 국민들은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그의 지나온 행적을 잘 살펴보아야할 것인데 특히 신뢰할 수 없는 사람 과거에 거짓말을 한 경력이 있는 사람을 절대로 뽑아서는 안 된다. 당선된 후 국민을 속이고 나라와 국민들에게 해로운 일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표리부동한 인간들이 너무 많으므로 제도적으로도 이를 확실히 확립하여 놓아야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 모두의 각성과 관심이 절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헌법이 제정된 이후 한 번도 그 본질적인 내용이 바뀐 적이 없고 지금도 연방대법원에 대한 신뢰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11월3일 대통령선거의 부정선거 논란은 결국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하니 같은 입장에 놓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2020.11.25. 이 주 관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난이 주는 유익 (0) | 2020.11.28 |
---|---|
‘우상숭배’로부터 나라 살리자 (0) | 2020.11.27 |
외교도 천리(天理)에 따라서 (0) | 2020.11.24 |
양심을 속이는 것이 (0) | 2020.11.23 |
양심을 속이는 것이 (0) | 2020.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