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중용(中庸)의 정치
중용사상은 극단 혹은 충돌하는 모든 결정(決定)에서 중간의 도(道)를 택하는 유교적인 교리로 해석된다. 이는 신중한 실행이나 실천을 뜻하며 중국 외에도 그리스의 플라톤(Platon) 또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하여 전개되기도 하였다.
유교사상에 있어서 중용이란 현실에 적용되는 행도(行道)의 최선의 길을 뜻하며, 형이상학적인 개념에서 출발하여 가치론적인 수양방법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자사(子思)가 지은 ≪중용≫의 핵심사상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전체의 핵심이며 상대가치개념의 중간인 중(中)을 인식하여 그로써 실행하여 나가는 사상인 것이다.
≪중용≫을 분석해 보면, 중은 양극(兩極)의 합일점이고, 용은 영원한 상용성(常用性), 즉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이(程頤)는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이라 하고 바뀌지 않는 것을 용이라 한다(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중은 공간적으로 양쪽 끝 어느 곳에도 편향하지 않는 것인데 비하여, 용은 시간적으로 언제나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중용의 논리구조는 이원적이다. 먼저, 개인적 수양의 완결은 천지만물의 질서 및 육성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고 본다. 수양의 완결은 별다른 매개 장치 없이 사물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해한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情)이 발하기 전 상태를 ‘중(中)’이라고 하고 발하여서 모두 절도에 알맞은 것을 ‘화(和)’라고 명명한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며 ‘화’는 천하의 막힘없는 도리로 보아 ‘중화를 이루면(致中和)’ 천지가 제자리를 찾고, 만물이 제대로 육성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개념을 ‘상황적 중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주체인 인간이 정성을 다해 수양하고, 그것이 사람과 만물에 영향을 미쳐서 천지만물의 변화와 육성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도 중용의 개념에 포함되어있는데 이런 개념을 이른바 ‘창조적 중용’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창조적 중용’의 관점에서 ‘중’을 얻는 에너지는 지성(至誠)임을 강조한다. 중용에서는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지성(至誠)’이 중용의 핵심개념이 되는 것으로, 지극한 성실함과 간절함이 없이 모순사이의 접점을 찾아가기 어렵고 대립하는 요소 사이의 미묘한 균형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을 통찰 한 것이다.
우리의 세종대왕은 이러한 ≪중용≫을 경연에서 교재로 삼았으며, 나아가 그는 중용의 도(道)를 얻고 구하는 것을 모든 정치행위와 법제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는 특히 ‘창조적 중용’을 추구하며 정치사회적 모순을 상황내적인 조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창의와 창안으로 새로운 차원의 해결을 모색하여 나갔다. 훈민정음의 창제, 향약집성방, 농사직설 등의 편찬, 앙부일구(해시계), 혼천의(渾天儀), 간의대(簡儀臺) 등의 발명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세종대왕은 다스림에 있어 최선의 길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옛정치의 사례에서 구하고 경전 속에서 지혜를 구하며, 많은 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했다, 중용 제 22장에서 말하는 “오직 하늘 아래 최고의 정성스러움만이 자기의 본성을 다할 수 있게된다(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그래야만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可以贊天地之化育)”는 말은 세종대왕에 부합되는 묘사이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함이 없이 신하들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독려하고 언제나 그들의 의견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본인이 알지 못하고 사물의 처리에 어두우니 하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므로 힘써 그 허물을 지적하여 하늘의 꾸짖음에 대답할 수 있게 자신을 도우라”고 지시했다(세종실록 7년 12월 8일).
정치의 목적에 관련해서는 “내가 박덕한 사람으로 생민(生民)의 주인이 되었으니 오직 이 백성을 기르고 무수(撫綏)하는 방법만이 마음속에 간절하다”(세종실록 5년 7월3일)고 술회하며, 정치의 목표가 “백성이 삶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세종대왕 시대의 수많은 시책은 백성을 향한 지극한 정성이 바탕이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목적의 정당성은 확신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신료들에게 강요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 인내와 설득 토론과 숙의(熟議)의 과정을 통해 합의와 공감을 얻어 신료스스로 따르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 본인이 납득하고 타인들도 납득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탐색해갔다. 지극한 정성이 중용을 있게 한다는 ≪중용≫의 서술을 경험적으로 증명한 리더가 바로 세종대왕이었다.
2024.11.27. 素澹
'안분낙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의 발전을 위하여 (6) | 2024.11.30 |
---|---|
약속의 말씀으로 새 힘을 얻고 (0) | 2024.11.28 |
효도(孝道), 영혼의 평안과 즐거움의 길 (1) | 2024.11.25 |
정의롭게 살아갈 때 (1) | 2024.11.22 |
이제는 정직을 회복하자 (3) | 2024.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