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된 마음과 차가운 살결 매화 서로 비쳐 밝았네
조선 성리학의 중추이며, 정치일선에서도 훌륭한 업적과 충절의 모범을 보였고, 가장 먼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존중하신 분으로는 아마도 서포 김만중 선생과 소재 이이명 선생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실사구시의 정신의 맥락에서 서포 김만중 선생은 우리나라 국문학에 큰 족적을 남기시었고 소재 이이명 선생은 무엇보다도 기독교(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여와 소개하고 천문 역산 등 서양의 앞선 문물을 들여와 우리나라의 선진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분들과 그 자손들이 기사환국, 신임사화로 누명을 쓰고 참화를 당하는 일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에 실학적 사고와 서양문물의 도입은 더 빨리 이루어 졌을 것이니, 구한말의 늦은 개화로 인한 나라의 참화가 닥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에 서포 김만중 선생과 소재 이이명 선생의 아름다운 관계를 그린 글, "매화병부(梅花病賦)"를 소개한다.
소재 이이명의 자는 양숙(養叔)으로 문정공(文貞公) 이경여(李敬輿)의 손자이다. 문형 대재학 김만중의 사위다. 숙종(肅宗) 6년에 을과(乙科)에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에 선발되어 임명되었다. 숙종의 죽음으로 고부사가 되어 연경에 갔을 때 독일신부 쾨글러와 포르투갈 신부 사우레즈 등을 만나 교유하면서 천주교와 천문·역산에 관한 서적을 얻어가지고 돌아왔다. 저서로는 소재집, 양역변통사의, 강역관계도설, 가도삼충전 등이 있다.
예전에 서포공이 귀양살이 하던 집 마당에 매화나무 두 그루를 심었더니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다. 내가 영해에서 다시 남해섬에 이배되어 갔더니 공의 시신은 이미 북으로 돌아간 뒤였다. 주인 잃은 두 매화는 황폐한 뜰에 초췌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공의 자취를 어루만지며 매화를 가엾이 여겨 내 거처하는 방 앞으로 옮겨 심었다. 매화는 다시 싱싱하게 살아나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되었다. <소재집>.
1689년 숙종은 남인을 중용하고 서인을 내치는 기사환국의 정계개편을 단행한다. 이 과정에서 서인의 주축인 병조판서 포암 이사명이 사사되고, 그의 동생 이이명이 영해로 유배된다.
이이명은 강원도 감사에서 병조참의로 돌아온 지 1년 만에 변을 당했다. 이 때 서인의 또 다른 리더 집안인 광산김씨 일문에도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구운몽의 저자인 서포 김만중이 남해로 귀양을 떠난 것이다. 김만중은 1685년 홍문관대제학 재직시 영의정 김수항을 변호하다가 선천(宣川)으로 유배된 뒤 1688년 방환(放還)되었다가 다시 정국 불안으로 남해(南海)로 귀양가 그곳에서 56세로 병사하였다.
김만중은 이이명의 장인이다. 영해로 유배되었던 이이명은 1692년 귀양지가 남해로 옮겨졌다.
장인을 만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잠시. 귀양지에 도착한 이이명은 이미 장인이 숨을 거두었고, 시신은 서울로 옮겨졌음을 알게 되었다.
이이명은 장인이 귀양살이 하던 집을 찾았는데 김만중이 심은 매화 두 그루가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다. 김만중은 매화를 아주 좋아했다.
많은 옛 선비들이 그랬듯이 그도 매화의 곧으면서도 고요하고 그윽하고 여유로운 기품에 빠져들곤 했다. 유배 중이던 김만중에게 매화는 인격을 지닌 선비나 다름없었다.
그는 유배의 시름과 유복자인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겸 마음의 위안을 삼고자 집 뜰에 매화 두 그루를 심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인 김만중은 쓸쓸하게 귀양지에서 죽었다.
이이명이 찾았을 때는 김만중의 돌봄을 받지 못하던 매화도 시들시들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이명과 김만중은 단순한 사위와 장인 사이가 아니었다. 노론이라는 당을 같이하는 정치적 동지였고,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학문적 동반자였다.
이이명의 증손자 이영유가 쓴 '소재이선생행장'에는 소재 이미명이 서포 김만중으로 지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중엔 천문학에 관한 것도 있다.
이이명이 1720년 북경에 사신으로 갔을 때 독일인 신부 쾨글러, 포루투갈 신부 사우레스 등과 만나 천문학 책과 천주교, 수학에 관한 자료를 구입해 온 것은 김만중의 실학적 학풍과도 연계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취미나 기운도 거의 같았다. 매화를 자신의 처소 뜰로 옮겨심은 뒤 다시 꽃이 피었는데 이는 자신의 기운과 장인의 기운이 비슷한 덕분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이이명은 매화를 보면서 어버이이자, 스승이고, 정치와 학문의 동반자인 김만중을 느꼈다.
그래서 가여운 매화를 어루만진 뒤 자신이 거처하는 방 앞으로 옮겨 심고, 물을 주고 사랑을 주며 정성을 쏟았다.
매화는 얼마 후 싱싱하게 살아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되었다. 이이명은 매화에 감정이입을 해 장인을 보았다. 그 감흥을 ‘매화병부’라는 글로 남겼다. 글 곳곳에 매화에 인격을 담았다.
그는 만물은 다 지각이 있는 데 효자가 부모를 그리워하며 곡을 하면 무덤의 잣나무가 죽고, 형제가 반목하면 나무가 마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김만중이 심은 매화 두 그루도 그가 죽은 뒤 홀로 황폐한 뜰에 초췌하게 죽어간 것은 매화가 죽음을 알고, 큰 슬픔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지어 칭송한다고 했다.
불타는 남녁은 병(病)도 있지만 나무는 잘 자라네
옥에 티로 남쪽에 귀양가매 매화 이미 이를 알아
뿌리 박고 꽃을 피워 외로움과 서러움을 달랬노라
얼음이 된 마음과 차가운 살결의 매화 서로 비쳐 밝았네
만리타향 황량한 곳에서 두 아름다움이 만났도다
사월의 해질 무렵 산새가 날아듦은
빈 뜰 거친 울타리에 의지하려 함이로다
아, 안타깝구나. 졸지에 빛을 잃고 쇠해짐은
의를 위한 곧은 마음 뒤따르고자 함이로다
영화와 고락도 함께하는 그 부끄럼 없는 절개
천하 충신의 교훈도 공에게는 미치지 못하노라
매화를 노래한 시인도 죽고, 절경인 고산도 비어있네
천년 만에 만났는데 문득 보니 길이 이별일세
하나의 마음으로 가슴 끌려 죽어도 못 잊나니
왕손 한번 떠남이여, 어느 때나 돌아오리
되바람 장마비에 보이는 게 꽃이건만
해 저무는 빈 골짜기 그 누가 알련가
말라죽으려 스스로 맹세함이여
죽어도 그 마음 변하지 아니하네
이 나그네 동에서 와 그 문 앞 지나다가
바람결에 향기 맡고 꽃다운 넋 울었나니
아들 아닌 사위지만 한평생 사모함이여
노성함은 없을망정 예전 법도 지키나니
원컨대 늦게나마 형제정의 맺고 지고
옛 선인의 글을 초혼(招魂)삼아 슬퍼 슬퍼 읊는도다.
<“세종대왕 가문의 500년 야망과 교육(이상주, 어문학사)”에서 발췌>
2024. 4.27. 素澹
*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遺墟)에서 *
······ 소재 이이명 선생, ‘매화병부(梅花病賦) 시작(詩作)의 배경을 설명하다.’
영해서 유배살이를 하다가 다시 남해로 가라는 어명을 받아 비록 죄가 덧씌워진 몸이 되었지만, 유배 중인 장인을 같은 적소에서 상봉한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먼 이배길을 빠른 걸음에 올려 노량나루를 건너 고도에 당도하였습니다. 다시 백련포구에서 아이들에게 물으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소식에 조각배를 빌려 장인의 적사지 삿갓섬에 당도하여 눈물로 장인의 초옥을 찾았습니다.
황폐한 마당에는 잡풀들이 한 자나 자랐고 장인께서 소중히 기르던 매화나무 두 그루만이 주인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었습니다. 처남이 이장 하였다는 허묘를 찾아 큰 절을 올리고 돌아오는 바다 길은 장인의 씻지 못한 누명인 듯 파도가 일어 마치 풍랑을 만난 듯하였으나, 매화나무 두 그루는 품으로 옮겨와 저의 방 앞에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장인의 기운과 저의 기운이 상통했던지 장인의 모습으로 착각을 한 듯 희한하게 매화나무가 파릇파릇 생기가 돋고 꽃을 피워 제 모습을 찾으니 어찌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조석으로 장인을 문안하듯 매화나무를 살피면서 비운 마음으로 적소살이를 하며 ‘습감재(習坎齋)’라는 작은 집도 짖고 이곳 선비들과 현민(縣民)들을 모아 학문을 서로 나누고 깨우쳐 가르치기를 다하니 세월은 유수 같고 세속의 일들이 다 한 낱 꿈이러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일장춘몽이 장인의 묵언집필과 국문소설 ‘구운몽’ 등의 기반이라 저의 평안이 한량없습니다.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노를 경계하라 (0) | 2024.04.30 |
---|---|
낙심(落心)하지 마라 (1) | 2024.04.28 |
국가의 탄생과 멸망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 (1) | 2024.04.25 |
심지(心志)가 견고한 자 (0) | 2024.04.24 |
지인(至人)은 평범할 뿐이다 (0) | 2024.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