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양과 신독(愼獨)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義)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태복음 6장1절). 존 번연(John Bunyan)은 ‘신실함이란 구석에 혼자 있을 때에도 마치 온 세상이 볼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편리함이나 이익을 위해서 상황에 따라 변하기 쉽다. 그러나 진실한 인격은 누가 보고 있든지, 무엇이 걸려 있든지 상관없이 변함없이 똑같은 것이다.
1653년(효종4년) 백강 이경여(李敬與) 선생은 임금에게 올린 상차문(上箚文)’에서 마음의 수양(修養)에 대해 말하기를 “대개 본심(本心)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君子)에게는 그 마음을 바로 하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君子莫大於正其心).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말하는 대근본(大根本)은 이것을 뜻합니다. 이를 함양하는 방도는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잊지 말아서 보존해 마지 않아야합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마음수양에 대하여 정조대왕은 “마음을 살피고 보존하는 공부는 오직 ‘신독(愼獨)‘이라는 두 글자에 달려 있다면서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곳에서 절실히 반성하고 부지런히 힘써서 선단(善端, 착한단서)이 일어나는 것을 없애버리거나 악념(惡念)이 발동하는 것을 자라나게 하는 일이 없게 하여야한다. “라고 하였다.
이 신독<또는 근독(謹獨)>이란 ‘혼자 있을 때 몸가짐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는 대학(大學) 전육장(傳六粧)에 이르기를 “소위 그 뜻이 성실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속임이 없는 것이니 ~ 고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도 삼가는 것이다.” 라는 말과 “소인은 한가할 때 그 선(善)하지 못함이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으니 ~ 고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도 삼가는 것이다.”라고 한 데에서 나온 교훈이다.
백강 선생이 신독에 대해 말하기를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고 하였습니다.(程子以爲: ‘天德 王道, 其要只在槿獨’)‘ 홀로 있을 때에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성인(聖)人의 극치(極致)라는 것도 결국은 이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위의 백강 선생의 ‘상차문’에서)
이러한 신독의 고결한 가르침은 로마서 13장13절의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고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와 또 마태복음 6장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라는 말씀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인데, 잠언 4장23절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총체적으로 확실히 못 박았다.
고로 모름지기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마음을 갈고 닦아 나가되 특별히 신독에 힘써야 할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과 성현(聖賢)의 말씀 묵상과 기도를 매일 매일 이어가면서 은밀하신 하나님과 수시로 소통함으로 그의 품성을 배우고 마음을 다스려 나가는 것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2-3절).
2022. 8.18.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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