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고난의 언덕에서

jookwanlee 2022. 1. 25. 06:40

고난의 언덕에서

 

채근담(菜根譚)에서 홍자성은 말하기를 “하늘의 뜻은 예측하기 어렵다. 시련을 주는가하고 생각하면 영달(榮達)을 주기도 하고 영달을 주는가하고 생각하면 다음은 또 시련을 준다.”라고 하여 우리 인생에 고난이 무시로 찾아옴을 일러주고 있으며, “역경에 처한 때에는 신변의 모든 것이 양약(良藥)이 되어, 절조(節操)나 행동이 모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닦아진다. 반면에 순경(順境)에 있을 때는 눈앞의 모든 것이 흉기로 화하여 몸 전체의 기운이 빠져 나가도 깨닫지 못한다.”라고 하여 고난의 이로움과 안락의 해로움을 말하였다.

 

우리는 고난이 닥칠 때 비관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것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상황들 속에서도 어떻게 기쁨을 찾는가를 배워야한다. 쇠는 불에 달구어야 강해진다. 추운 겨울을 보낸 봄 나무들이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안락은 악마를 만들고 고난은 사람을 만든다. 뜨거운 가마 속에서 구워낸 도자기는 결코 빛이 바래는 일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난의 아픔에 단련된 사람의 인격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안락은 악마를 만들고 고난은 사람을 만드는 법이다.” - 쿠노 피셔(Kuno Fischer).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治癒)하시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심도 은혜이다. 인생에 별로 어려움을 모른다면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성장을 위하여 고난과 고통과 어려움은 필요하다. 고난은 하나님을 깊이 알고 깊이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같이하는 친한 벗과 같다. 고난에 익숙하여져라. 고난의 때를 기대할 것은 아니지만 즐겨라.

고난의 언덕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부정하게 만든다.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잡도록 만든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함이라 (빌립보서1;29)“

 

고난과 고통은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일과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고대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생을 기다리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잘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세상의 시련들은 예수 안에서 성장하는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며 따라서 시련이 우리에게 닥칠 때에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서1장2-3절).“ 인내는 우리가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은 자신이 성장하므로 만들어 놓은 잣대만큼만 세상을 잴 수 있으며, 살면서 힘든 만큼 깨우침을 얻을 수가 있으므로 또한 행복하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는 길은 오로지 환경을 넘어서는 우리의 믿음이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의 죽음을 나누므로 그의 부활의 힘을 체험하고 그 기쁨을 누리고자함이 우리의 소망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하노니!”(빌립보서3장10-11절). 어찌하든지 부활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자.

 

2022. 1.25.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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