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謙遜)과 절의(節義)
“대나무가 가늘고 길면서도 모진 바람에 꺾이지 않는 것은 속이 비었고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 성철스님
속이 비었다는 것은 겸손(謙遜)하고 공경(恭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며, 마디가 있다는 것은 진리를 사랑하고 절의(節義)를 지키려는 의지를 갖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중요하게) 여기고” ~ 빌립보서 2장3절. 겸손하고 만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면 반드시 경계해야하는 것이 독버섯처럼 일어나는 교만심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잠언 16장18절. 성공할 때 조심하라. 잘나갈 때 조심하라! 때때로 성공 후 교만이 은밀하게 다가와 결국 우리를 넘어뜨리는 치명적인 사탄의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역대하 32장25절.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14장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진리를 하나님과 성현(聖賢)들의 말씀을 배우면서 또 자연현상과 인간의 양심을 연구하면서도 접할 수는 있으나 참으로 진리를 체득하고 그 절의를 지키며 살아가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과 역경을 몸으로 겪으면서 얻는 산 경험을 통하여 인격과 성품의 성숙을 이루어 가야한다.
“역경은 진리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이다” ~ 바이런(George Byron). 역경과 고난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축복으로 가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鍊鍛)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베드로전서 4장 12-13절.
삶에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는 모진 바람에 꺾이지 않는 대나무처럼 험난한 인생여정을 극복하고 평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인 천상병은 욕심 없이 살다 간 사람이다. 그에게는 자식도, 돈도 없었다. 그는 동베를린 사건 때 누명을 쓰고 폐인(廢人)이 될 정도로 고문(拷問)을 받아 심신(心身)이 온전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귀천(歸天)’이란 제목의 시에서 세상살이를 ‘소풍’에 비유하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아침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이 손짓하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우리도 천상병 시인처럼 세상소풍을 마치고 가고자 꿈꾸었던 하늘나라, 천국에 이르도록 하자. 그러자면 우리 삶의 목적은 세월과 더불어 변질되는 목적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갖는 목적이 되어야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세월과 더불어 변하고 말지만 진리의 세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2021.10.14.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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