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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일에는 모두 요령이 있으니 ~ 백강 이경여 선생

jookwanlee 2021. 6. 25. 03:07

천하의 일에는 모두 요령이 있으니 ~ 백강 이경여 선생

 

효종실록 9권, 효종 3년 10월 25일 癸亥 2번째기사 1652년 청 순치(順治) 9년

영중추부사 이경여가 분부에 응하여 올린 정치의 요령을 터득하라는 차자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분부에 응하여 차자를 올리기를,

"천하의 일에는 모두 요령이 있으니, 요령을 얻으면 일은 반으로 줄고 공적은 배로 늘 것이며, 요령을 얻지 못하면 마음만 수고롭고 일은 날로 졸렬해질 것입니다. 마음을 바루는 요령은 분노를 누르고 욕심을 막는 것이며, 몸을 닦는 요령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마는 것입니다. 집안을 다스리는 요령은 궁금(宮禁)을 엄하게 하여 사문(私門)을 막고, 우애가 흘러 넘치되 가르침이 그 가운데에서 베풀어지고, 가까이 모시는 자에게 엄절히 함으로써 멀리 전감(前鑑)에 징계되어 좌우 전후가 한결같이 바른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학문을 강구하는 요령은 항상 경건한 자세로 사리를 밝히며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를 따르는 것입니다. 엄숙하고 공경하고 삼가고 두려워하는 자세로 상제(上帝)를 대하는 것이 하늘을 공경하는 요령이고, 내 몸이 다칠까 조심하듯 윗사람의 것을 덜어서 아랫사람을 돕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요령이고,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일체가 되어 나라의 기본 법칙을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하게 적용함이 기강을 세우는 요령이며, 형벌과 상이 알맞고 거조가 마땅한 것이 인심을 따르게 하는 요령입니다.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어진 사람을 임용하고 유능한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처신을 허물없이 하려면 반드시 간언을 받아들이고 널리 듣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검소를 밝혀 풍속을 변화시키려면 반드시 소박한 음식을 먹고 허름한 옷을 입는 것으로 궁액(宮掖)을 거느리는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용도를 절약하여 백성을 넉넉하게 하려면 반드시 절도 있게 제약하고 겉치레 제거하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옥송(獄訟)이 다스려지게 하려면 반드시 감히 모든 옥송과 모든 신계(愼戒)에 간섭하지 말고 유사가 공평하게 다스리도록 맡겨 두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신하들이 함께 삼가고 공손하게 하려면 반드시 당색(黨色)을 다 잊고 시비와 현사(賢邪)를 가리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하며, 하늘의 큰 명을 맞아 이어 가려면 반드시 가혹한 정사를 없애고 인후한 풍속을 숭상하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합니다. 뭇 신하의 곡직(曲直)을 알려면 반드시 아첨하는 자를 멀리하고 충직한 자를 가까이하며, 강직하고 방정한 말을 좋아하고 순종하고 예삐 보이려는 꼴을 미워할 것이며, 종종걸음으로 쫓아다니면서 맞추는 것을 공손하다고 여기지 말고 직언으로 간하고 물러나기 좋아함을 거만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을 요령으로 삼아야 합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정신을 돋우어 잘 다스리려고 도모하여 거행하지 않은 방책이 없으셨으므로 진실로 천의(天意)에 부합하고 인심을 확고히 하여 앉아서 태평의 공이 이룩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도(世道)가 날로 낮아지고 시정(時政)이 날로 어지러워져서 위에서는 하늘이 노하고 아래에서 백성이 원망하여 큰물과 가뭄이 잇달고 재해가 몰려드니, 신은 감히 전하께서 이 몇 가지에 대하여 그 요령을 얻었어도 오히려 보람을 얻지 못하시는 것인지, 또는 그 요령을 얻지 못하고 중도에서 배회하여 한갖 성려(聖慮)만 수고롭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전하께서 깊이 생각하고 두렵게 여겨 전에 하신 일을 크게 반성하고 성제 명왕(聖帝明王)이 이미 행한 큰 원칙을 다시 찾고 눈앞의 비근하고 잗단 정사를 따르지 말고 신이 이른바 그 요령이 있다는 것을 힘껏 행하소서. 수년 동안 이렇게 하시는데도 하늘이 재앙을 거두지 않고 정치에 성적이 없다면, 신이 망언한 주벌(誅罰)을 받겠습니다.

또 임금의 위엄은 천둥·번개 같을 뿐이 아니므로, 희로(喜怒)가 천리(天理)를 따르지 않고 상벌(賞罰)이 5용(五用)140) 에 어그러지면, 그 폐해로 반드시 백성이 손발을 둘 데가 없어지고 임금과 신하 사이가 날로 멀어져서 천지가 막히고 간사한 길이 열려서 의혹이 총명을 가리게 될 것이니, 이것은 어지러움을 가져오는 지름길입니다. 성세(盛世)에 멀리 귀양간 사람들이 반드시 사흉(四凶)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없고 경력(慶曆) 연간의 폄출(貶黜)141) 이 명류(名流)에서 많이 나왔는데, 곧바로 임금이 허물을 고친다고 한들 어찌 당초에 신중한 것만하겠습니까. 궁벽한 마을의 필부(匹夫)도 자손을 위하여 생각하는데 이는 사랑하는 천성에서 나온 것이니, 임금의 경우도 귀천이 다르기는 하나 자식을 사랑하여 부유하게 하려는 이 마음이야 어찌 다르겠습니까마는, 전장(田庄)·제택(第宅)에는 반드시 그 제도가 있습니다. 국운이 융성한 조종(祖宗)에서 경제력이 모자랐던 것도 아닌데 법전(法典)에 실린 기록은 각각 그 절도가 있었으니, 후세에 대한 염려가 깊은 것입니다. 한 명제(漢明帝)는 여러 아들을 분봉하면서 초(楚) 땅의 반을 회양(淮陽)에 붙였고 당(唐)나라 임금은 물방아를 공주(公主)부터 먼저 없애라고 명하였는데, 더구나 흉년이 들어 백성이 곤궁하고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운 이때이겠습니까. 신하를 예로 부려야 한다는 성인의 가르침이 매우 분명한데, 차꼬와 수갑을 채워 가두고 매질하는 것이 위로 대부(大夫)에게까지 미치니, 무너진 기강을 떨치고 바로잡는 데에는 보탬이 없고 도리어 나라의 체모를 손상하게 됩니다. 전에 한 문제(漢文帝)가 강후(絳侯)142) 를 잡아 다스렸는데 가생(賈生)143) 이 상소함에 따라 깊이 깨닫고 이때부터 뭇 신하를 예우하였으니, 임금이 간언을 채택함에 이것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 신하의 의리로는 그릇되게 붕당을 이룸이 없어야 하는 법이니 자기 무리만 옳다고 하여 다른 사람을 배격하는 것은 실로 큰 죄입니다. 그러나 붕당을 없애려고 하면서 병근(病根)을 먼저 만들고, 감싸고 어그러진 실상을 구명하려 하지 않고 혼동하여 벌을 주니, 이 때문에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천심(天心)을 함부로 헤아리고 자취를 드러내지 않으려 꾀합니다. 그래서 쓸 만한 인재가 있어도 감히 천거하지 못하고 미워할 만한 죄가 있어도 감히 논박하지 못하며, 저편에서 천거한 것은 이편에서 사사로운 천거라 하고, 이편에서 논박한 것은 저편에서 모함한다 하여, 트집잡고 편들며 구호하고 배척하므로 흑백이 현란합니다. 전하께서 어찌하여 이 두 끝을 잡아서 보신(輔臣)과 시종(侍從)에게 물어서 쓸 만하면 쓰고 죄줄 만하면 죄주며 치우친 마음이 없이 처치하여 한결같이 공론에 따르지 않으십니까.

신이 비망기(備忘記)를 보니, ‘음이 성하고 양이 미약하여 아래에서 위를 엄폐한다.’는 하교가 있었는데, 성상께서 무엇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음이 성하고 양이 미약한 것은 그 까닭이 한결같지 않아서 군자 소인의 진퇴와 존비 상하의 도치(倒置)와, 개인에 접근시킨다면 선악의 소장(消長)과 공사(公私)의 호전(互轉) 등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어서 수시로 경계를 보입니다. 지금의 효상(爻象)은 과연 성쇠(盛衰)가 실도(失道)한 것입니다마는, 아래에서 위를 엄폐한 것이라면 반드시 권간(權奸)이 집정(執政)하여 성상의 총명을 가림이 있어서 꾸중이 위에서 나타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높은 지위나 요로에 있는 자가 뭇사람의 의견을 좇기에도 겨를이 없으니 정사의 권위가 의지할 데가 없어서 마치 키를 잃은 배와 같습니다. 이들이 어찌 다 재능이 없어 직무를 버려두고 태만한 자들이겠습니까. 다만 전하께서 강단이 너무 지나치고 위임이 전일(專一)하지 않아서 자신들의 허물을 바로잡는 데에도 겨를이 없는 것이니, 무슨 재능을 펼 수 있겠습니까.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다 그러한데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총명을 가리고 스스로 위복(威福)을 펼 수 있겠습니까. 신이 보건대 언로가 이미 막혀 아랫사람의 뜻이 위에 통하지 않으니, 햇빛이 구름이 없는데도 혹 가려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신하에게 의심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성궁(聖躬)에 돌이켜서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 힘쓰소서. 사문(四門)을 열어 안팎이 환히 통하고 성의가 서로 미더워서 아래로 광명(光明)을 이루어 태운(泰運)이 크게 오게 한다면, 흐린 것이 절로 없어지고 양덕(陽德)이 바야흐로 형통할 것입니다."하니,

답하기를,

"경이 내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염려하여 이토록 간절히 경계하니, 내가 불민하기는 하나 동심(動心)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반드시 실행하겠다는 뜻을 선뜻 말하는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닐 듯하므로 감히 못할 뿐이다. 경은 이 뜻을 바꾸지 말아서 자주 깨우쳐 주고 내 과실을 부지런히 공박해 주기 바란다. 원차자는 한번 보고는 그 조목조목 아뢴 요령들을 기억할 수 없어서 늘 보려 하므로, 내리지 않겠다."하였다.

이때 이변이 거듭 나타나서 인심이 어수선하고 상도 위구하여 직언을 구하는 하교에 음이 성하고 양이 미약하다는 말을 언급하였는데, 윤선도(尹善道)가 벌써 이것으로 뜻을 맞출 생각을 하여 임금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이때부터 조정 신하들 중에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는데, 이경여가 상소하여 언급하였다.

 

【태백산사고본】조선왕조실록 9책 9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82면

【분류】정론-정론(政論)

 

[註 140]5용(五用) : 5복(五服)과 5형(五刑)을 등급에 맞게 쓴다는 뜻.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에 "하늘이 덕 있는 자를 명하거든 오복(五服)으로 등급에 맞게 표창하고 하늘이 죄 있는 자를 치거든 오형으로 등급에 맞게 징계하시어 정사(政事)를 힘쓰소서." 하였다.

[註 141]경력(慶曆) 연간의 폄출(貶黜) : 송 인종(宋仁宗)은 송대(宋代) 제일의 인주(仁主)로 일컬어지나 경력(인종 중기의 연호, 1041∼1048) 연간에 명신(名臣) 한기(韓琦)·범중엄(范仲淹) 등을 파직했었다.

[註 142]강후(絳侯) : 주발(周勃).

[註 143]가생(賈生) : 가의(賈誼).

 

○領中樞府事李敬輿應旨上箚曰:

天下之事, 莫不有要, 得其要則事半而功倍, 不得其要則心勞而日拙。 正心之要, 懲忿窒慾是也; 修身之要, 非禮勿視聽、言動是也。 齊家之要, 嚴宮禁、杜私門, 友愛隆洽、而敎施於其中; 操切近習, 而遠徵於前鑑, 左右前後, 一出於正是也。 講學之要, 居敬而明理, 克己而復禮是也。 嚴恭寅畏, 對越上帝, 敬天之要也; 如傷若保, 損上益下, 愛民之要也; 宮、府一體, 建極無私, 立紀綱之要也; 刑、賞得中, 擧措合宜, 服人心之要也。 如欲建功立事, 必以任賢使能爲要; 如欲置身無過, 必以納諫兼聽爲要; 如欲昭儉化俗, 必以菲食惡衣, 以率宮掖爲要; 如欲節用裕民, 必以制節謹度, 屛去文具爲要; 如欲獄平訟理, 必以罔敢知于庶獄庶愼, 一任有司之平爲要; 如欲同寅協恭, 必以兩忘物色, 辨別是非、賢邪爲要; 如欲迓續景命, 必以去苛刻之政, 崇仁厚之風爲要; 如欲識群臣之枉直, 必以遠諂侫、近忠讜, 喜剛方正直之言, 而惡承順媚悅之態, 趨走逢迎, 勿以爲恭, 謇諤廉退, 勿以爲慢爲要。 殿下卽阼以來, 勵精圖治, 靡策不擧, 固宜克享天意, 固結人心, 坐致太平之功, 而世道日卑, 時政日紊; 天怒於上, 民怨於下; 水旱相仍, 災害荐臻, 臣不敢知殿下 於玆數者, 得其要而猶不能食其效耶, 抑不得其要, 徘徊中路, 而徒勞聖慮耶? 若殿下深思惕念, 一反前爲, 更求聖帝明王已行之大經大法, 勿循目前卑近煩瑣之政, 以臣所謂有其要者, 勉强而力行之。 如是數年, 天不悔禍, 治未底績, 則臣當伏妄言之誅矣。 且人主之威, 不啻雷霆, 喜怒不循乎天理, 刑賞有乖於五用, 則其害必至於民無所措手足, 堂陛日遠, 天地閉塞, 邪徑仍開, 疑惑蔽聰, 此致亂之捷逕也。 熙朝遠竄, 未必四凶, 而慶曆貶黜, 多出名流, 雖旋仰日月之更, 豈若愼重於其初乎? 窮閻匹夫, 爲子孫計者, 此出於慈愛之天, 其在帝王, 貴賤雖殊, 愛之欲富, 此心何異? 但田庄、第宅, 必有其制。 祖宗盛際, 非爲時屈, 而令甲所載, 各有其節, 慮後世也深矣。 漢 明分封諸子, 半楚 淮陽; 唐宗命罷水碓, 先從公主, 況此歲飢民困, 國勢岌岌者哉? 使臣以禮, 聖訓孔彰, 而械縲鞭撻, 上及大夫, 無益於振頓頹綱, 反歸於虧損國體。 昔漢 文逮治絳侯, 因賈生之疏, 而深加覺悟, 自是禮遇群臣, 人主用言, 此宜爲法。 且人臣之義, 無有淫朋, 比德排擊, 固是大罪。 欲罷朋黨, 先成病根, 纏繞乖戾, 不肯究竟實狀, 而混施譴罰。 是以, 在朝之臣妄度天心, 圖避形迹。 有可用之才, 而不敢薦; 有可惡之罪, 而不敢論, 彼之所薦, 此以爲私引; 此之所論, 彼以爲傾軋, 藉口攘臂, 救護攻斥, 黑白眩亂。 殿下何不操此兩端, 詢諸輔臣侍從, 可用則用, 可罪則罪, 無心以處, 一循公議也? 臣伏覩, 備忘有陰盛陽微, 爲下蔽上之敎, 未知聖意指何而發也。 陰盛陽微, 其端不一, 君子小人之進退、尊卑上下之倒置, 近諸身, 則善惡之消長、公私之互戰, 無不繫焉, 隨時示警。 當今爻象, 果爲盛衷失道, 而至若以下蔽上, 則必有權奸執政, 壅蔽聰明, 以致謫見於上也。 今之處大位要路者, 奔走逐隊, 日不暇給, 則事權無寄, 如舟失柁。 此豈皆無才曠位, 悠泛是事者哉? 特以乾剛太亢, 委任不專, 救過不贍, 何才之可展也? 在庭臣僚, 莫不皆然, 更有何人, 能蔽四聰, 自張威福乎? 以臣觀之, 言路已塞, 下情不通, 無乃白日之光, 無雲而或蔽耶? 願聖明, 以疑於下者, 自反於聖躬, 有則改之, 無則加勉。 廣開四門, 表裏洞徹, 誠意交孚, 以致下濟光明, 泰運大來, 則陰翳自去, 陽德方亨矣。

答曰: "卿念寡昧之憂懼, 諄諄戒誨至此, 予雖不敏, 可不動心? 但不度力量, 先言必行之意, 似非眞實, 故不敢耳。 惟卿毋替此意, 頻頻誨諭, 勤攻予之過失。 原箚則一覽, 未足以記憶, 條陳諸要, 欲常觀覽, 故不下矣。" 時, 變異層出, 人心洶洶, 上亦危懼, 乃以陰盛陽微之說, 及於求言之敎。 尹善道旣以此爲迎合之計, 以搖上心, 自是朝臣無敢言者, 敬輿疏及之。

【태백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9책 9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82면

【분류】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