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매화

jookwanlee 2020. 2. 11. 14:01

매화(梅花)를 사랑하는 뜻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할 것인데, 늘 가까이에 두고 즐기는 대상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우리의 선조님들은 올바른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치열한 선비정신으로 이를 북돋우는 정서를 지닌 매화나무를 특히 사랑하여왔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삶은 다른 동물과는 달라 결국 그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게 되는 것으로 귀결되는데,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우리들도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를 추구하여 이에 삶을 던져 몰입하여 나아감이 참으로 복된 삶의 길이 아닌가 생각 된다. 이것이 내가 또한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하다.

 

이를 더욱 새롭게 하는 뜻으로 백강 이경여 선생이 중국에 볼모로 잡혀가서 가져오신 부여동매를 소개한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8) 부여 백강마을 ‘부여동매’

日帝 시샘받아 불탄 冬梅, 그 자리 白梅로 소생…

 

매화만큼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나무도 없다. 고즈넉한 선비의 정원 귀퉁이에 홀로 은은한 향기를 자아내며 피어 있는 매화는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 가는 길목에서 화사한 꽃을 피운다. 선비들은 한겨울에 눈 속에서 고아한 자태로 피어나는 매화의 결기가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제 길을 가는 선비를 닮았다고 보았다. 은근하게 배어나는 매화 향기는 사락사락 책갈피 넘기는 소리만 살아 있는 극단적 고요 속에서 더 짙게 느낄 수 있다. 옛 사람들이 매화 향기를 귀로 들어야 제격이라며 문향(聞香)이라는 말을 지어낸 것도 그래서다.

 

●볼모로 잡혀 갔던 청나라서 몰래 들여와

 

적막감이 감돌만큼 나른한 봄날 오후 충남 부여 규암면 진변리 백강마을의 깊은 침묵을 깨뜨린 건 은은한 향을 담고 화사한 꽃을 피운 한 그루의 매화나무였다.

 

마을회관 옆집에 사는 김영갑(83) 노인이 매화 꽃의 봄노래를 한 수 거들고 나섰다.

 

“400년 전 병자호란이 났을 때, 인조의 세 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어. 그때 그들이 붙잡혀 간 곳은 압록강보다 더 북쪽인 심양이었지.”

 

김 노인은 나무를 바라보며 400년 전 조선의 역사부터 아주 느릿하게 풀어 놓았다.

 

“심양은 오줌을 누면 오줌발이 그대로 얼어붙을 만큼 엄청나게 추운 곳이야. 선비 중에 백강 이경여 선생이 왕족을 수행하기 위해 심양까지 갔지. 선생이 어느 날 그 추운 곳에서 환하게 핀 꽃을 본 거야. 얼마나 놀라웠겠어. 이 양반이 나뭇가지를 한뼘만큼씩 꺾어서 몰래 들여와 여기에 심었지. 그중에 두 그루는 빨간 꽃이 피는 홍매고, 한 그루는 하얀 꽃이 피는 백매였어.”

 

‘부여동매’라는 고유명사로 부르는 백강마을의 매화나무는 그러나 그만큼 오래돼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50년 정도 돼 보이는 나무인데, 일제 침략기에 천연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됐던 나무라고 한다. 나무의 나이와 나무에 얽힌 이야기의 연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세 그루의 매화나무가 잘 자랐어. 워낙 추운 지방에서 꽃을 피우던 나무여서 여기에서도 추운 겨울에 꽃을 잘 피웠지. 한데 그중에 두 그루의 홍매는 오래전에 죽었고, 백매 한 그루만 남게 됐어.”

 

이야기가 길어지자 노인은 아예 길가로 이어진 밭 둔덕에 주저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마을 정신적 중심에 놓인 한 그루 나무

 

김 노인의 말 끝에는 나무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이 마을 선조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득 묻어 있다. 노인은 자신의 10대조 할아버지가 조선 중기의 예학자인 사계 김장생 선생인데, 매화나무를 이 자리에 심은 백강 이경여 선생은 김장생의 아들인 신독재 김집 선생 때에 이르러 사돈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매화나무 바로 뒤편으로 보이는 부산서원은 백강 이경여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손수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던 마을의 정신적 중심이다. 지금은 이경여 선생과 사돈 사이인 김집 선생을 함께 배향하고 있다.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마을은 백강마을로 불린다.

 

매화는 예로부터 선비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부여동매는 조선 중기에 명재상 영의정 이경여 선생이 특별히 애지중지하며 키운 까닭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보물처럼 여겨질 뿐 아니라 선비 마을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마을의 극진한 보호 덕에 일제 침략기까지만 해도 이 나무는 나라 안에서 가장 훌륭한 매화나무로 자랐다. 일본인들까지도 이 나무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나무 앞에 ‘조선의 동매’라고 새긴 돌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그때 세운 비석에 새겨진 글씨들은 세월의 바람에 깎여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다. 최근 그 곁에 새로 ‘부여동매’라는 글씨를 선명하게 새긴 새 비석을 세웠고, 부여군에서는 나무의 내력을 담은 큼지막한 안내판을 놓았다.

 

“저 안내판에는 이경여 선생이 심은 나무가 불에 타 죽고 나서 한참 지난 뒤에 죽은 나무의 뿌리에서 새로 싹이 나서 이만큼 자랐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불에 타 죽은 나무에서 어떻게 새 싹이 돋겠는가. 지금 저 나무는 40년 전에 규암면장을 지낸 이가 새로 갖다 심은 거야. 그러니까 겨울에 꽃을 안 피우고, 이렇게 따뜻한 봄에 꽃을 피우는 거지.”

 

부여동매는 해마다 동지 즈음에 하얀 꽃을 피우고,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또 한 차례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무는 겨울에 꽃을 피우지 않고 봄에만 꽃을 피운다.

 

동매나무 뒤로 백강 이경여 선생을 배향한 부산서원(浮山書院)과 재실이 보인다.

 

●천년의 향을 담고 오랜 세월을 살아

 

나무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척 건강하고 우람했다고 한다. 둘로 나눠지며 자란 줄기 중 하나에는 그네를 매 뛸 만큼 단단했다는 것이다. 동매가 쇠약해지고 죽음에 들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한다.

 

우선 김 노인은 “나무가 하도 좋아서 일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꺾어 가는 바람에 약해졌다가 나중에는 아예 불을 질러 죽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른 이야기로는 일본인들이 물러간 직후 홍수가 들었고, 마을 앞 백마강이 나무를 덮쳐 죽게 됐다고도 한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건만 나무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400년 전의 역사를 안고 살아 왔던 매화나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대를 이어 가는 애정만큼은 분명했다.

 

김 노인이 앉아 있는 밭 둔덕 위로 상큼한 봄 내음을 가득 담은 매화꽃 바람이 건듯 불어 온다. 한 그루의 매화나무는 지금의 김 노인처럼 이 자리에 주저앉아 우리 역사의 한 토막을 서리서리 풀어낼 것이다. 하얗게 센 노인의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드는 봄바람에 1000년의 향이 담겼다.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2011-04-21 서울신문 21면

 

백강 이경여 선생의 손자인 소재 이이명 선생과 그의 장인인 서포 김만중 선생도 모두 매화를 극진히 사랑하여 같은 남해의 귀양지에서 조차 매화를 기르며 마음을 가다듬은 바 있다.

 

소재 이이명 선생은 남해 귀양지에서 매부(梅賦)란 시를 지어 매화를 기렸다. 남해 유배지에서 돌아간 장인 서포 김만중 선생을 그리워하며 매부를 지은 것이다.

 

소재 이이명선생이 영해 땅에 3년 동안 유배되어 머물고 있을 때 남해에 유배되었던 장인인 서포 김만중 선생이 병으로 타계하자 곧바로 남해로의 이배령(移配令)이 내려왔다. 남해로 유배지를 옮긴 소재 이이명 선생은 장인이 귀양살이를 하던 집에 들러 옛날을 회상했다. 그리고 시들어가는 두 그루 매화나무를 자신의 거처에 옮겨 심고「매부(梅賦)」를 지어 장인의 뜻을 기렸다.

 

梅賦 壬申

 

凡物之有生氣者。皆似有性情知覺。若孝子哭而墓柏死。兄弟分而庭荊枯者是已。感應之理。不可誣也。西浦公謫舍。嘗種二梅樹。每歲開花結子。余自東邊移入島中。旅櫬已北歸。而二梅獨立荒庭。憔悴欲死。余撫遺躅而憐之。移植於所居堂前。藹然復蘇。枝葉已向茂矣。卉植百品。惟梅獨稟其幽貞皎潔之性。 公之好之也。正以其氣味之相近。而梅之不二公於存沒之際者。眞若士之爲知己。女之爲所天。其意有足悲者。作賦以頌之。

 

 

炎州地瘴。卉木滋兮。玉玦南遷。梅受知兮。托根敷榮。慰幽獨兮。氷心雪膚。炯相燭兮。窮荒萬里。兩美合兮。日斜孟夏。野鳥入兮。空園脩竹。倚荒籬兮。於悒無色。奄披離兮。嗟爾貞心。類服義兮。榮枯一節。廓其無媿兮。離騷詠物。非至公兮。廣平旣沒。孤山空兮。千春始遌。遽永謝兮。一念嬋媛。耿難化兮。王孫一去。曷月而歸兮。蠻風蜒雨。縱自芳菲兮。歲暮空谷。識者其誰兮。枯槁自矢。死無移兮。客自東來。醉過門兮。臨風三嗅。泣芳根兮。慚非玉潤。慕生平兮。雖無老成。尙典刑兮。願托晩契。如弟昆兮。悲吟楚些。與招魂兮。

 

매부 *1692년, 소재 이이명 선생이 남해에 유배당하였던 때 지은 작품이다.(출처 ~ 소재집<疎齋集>)

 

무릇 사물에는 생기라는 것이 있는데 대개 성정과 지각이 있는 것과 같다. 마치 효자가 곡을 하면 무덤의 잣나무가 죽고 형제가 떨어지면 뜰 앞의 가시나무가 마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감응의 이치는 업신여길 수가 없다. 서포공이 유배된 집에 일찍이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내가 동쪽 바닷가에서 옮겨와 섬 가운데 들어왔는데 (장인이) 이미 별세하여 북쪽으로 반장하니 두 그루 매화나무는 홀로 거친 뜰에 서서 말라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공께서 남기신 자취를 어루만지며 가엽게 여겨 적소의 집 앞에 옮겨 심으니 우거져 다시 소생하여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온갖 꽃이 피어났다. 오직 매화는 그윽한 절개와 고결한 성품이라 공께서 좋아하셨다. 올바름으로 기미가 서로 가까우니 매화는 공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둘이 아닌 것이다. 참으로 선비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하고 여인이 남편을 위하듯 그 뜻이 슬퍼할만 하니 부를 지어 기린다.

 

불타는 고을에 병은 나돌아도

풀과 나무는 잘 자라네.

 

옥에 티로 남쪽에 귀양가니

매화가 미리 알았네

 

뿌리 내리고 꽃을 피워

외로움을 달랬구나.

 

얼음 같은 마음과 눈 같은 살결

서로 비추어 밝히셨네

 

거칠고 외진 만리 땅에

두 아름다움이 만났구나.

 

사월에 해 질 무렵

산새가 날아드네.

 

빈 뜰에는 긴 대나무

거친 울타리에 기댔구나.

 

슬퍼서 빛을 잃어

우수수 떨어지네.

 

아, 깨끗한 마음이여

너도 의리에 따르구나.

 

영화와 고락에도 한결같은 절개여

텅 비어서 부끄러움 없구나.

 

굴원이 이소를 읊었지만

공에는 이르지 못했구나.

 

송경(宋璟)은 이미 죽고

고산(孤山)은 비었구나.

 

천 번의 봄을 만났었으나

이번 봄 갑자기 영원히 따나가셨네.

 

한 마음으로 고이 끌려

떨칠 수가 없구나.

 

왕손이 한 번 떠나니

어느 때나 돌아올까.

 

되 바람 구진 비에도

예쁜 꽃은 피는구나.

 

한 해 저문 빈 골짜기

아는 사람 그 누구인지.

 

말라 죽고자 스스로 맹세하니

죽어도 마음 변하지 않네.

 

동쪽에서 온 나그네

취하여 문 앞을 지났더니.

 

바람결에 실려 온 향기

꽃다운 뿌리에 울었어라.

 

공의 사위일지라도 부끄럽지만

한평생 동안 사모하였네.

 

비록 늙어 이루신건 적지만

그 전범은 여전하셨지.

 

원컨대 늘그막에 맺은 정이야

형제와 같았다네.

 

슬프게 초사를 읊으며

이에 공의 혼을 부르노라.

 

주(註)

*여츤(旅櫬); 반장(返葬), 곧 죽은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 매장하는 일.

*소천(所天); 하늘처럼 받들고 의지해야 할 대상. 여기서는 남편을 뜻함.

*이소(離騷);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이 읊은 노래.

*광평(廣平); 광평군공(廣平郡公)의 봉호(封號)를 받은 당나라 문장가 송경(宋璟). 매화를 읊은 광평부(廣平賦)가 있다.

*고산(孤山); 송나라의 은자(隱者) 임포(林逋). 고산처사(孤山處士)라고도 한다. 그는 서호(西湖)의 고산에 띠로 엮은 집을 짓고 스무 해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매화를 가꾸고 학을 기르며 홀로 살았다.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고사가 전한다.

*옥윤(玉潤); 남의 사위에 대한 미칭. 진나라 위개(衛玠)가 악광(樂廣)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당시에 “장인은 빙청(冰淸)이요 사위는 옥윤(玉潤)이라.”는 평판을 얻었던 고사에서 유래함. 진서晉書, 위개전衛玠傳.

*초사(楚些); 사(些)는 초사(楚辭)의 초혼편(招魂篇) 구절의 끝에 붙인 어조사(語助詞)로서 초혼의 주문(呪文)을 뜻한다.

 

56세를 일기로 소천한 장인 서포 선생의 혼을 기리는 애절한 정이 넘쳐나는 「매부」는 소재 이이명이 남해에서 남긴 작품 중 하나이다. (2012. 9. 김상철 남해유배문학관장)

 

2018. 2.1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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