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을 다스리는 법
여보(如寶)는 같을 如(여)자와 보배 보(寶)자이며 보배와 같이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이는 주로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하는 말이었다. 당신(當身)이라는 말은 마땅할 당(當)자와 몸 신(身)자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로 내 몸과 같다는 의미이며, 주로 여자가 남자를 부를 때 하는 말이었다.
오늘날은 이 두 단어를 부부사이에 별로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는데, 적어도 여보와 당신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용한다면 서로를 좀 더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 이는 부부 사이의 싸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건 물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칼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칼에 잘린 물은 금방 되돌아오지만, 물에 자주 닿은 칼은 결국 녹이 슬고 만다. 부부 싸움의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갈 수가 있다. 가슴에 못 박는 아픈 얘기는 입 밖으로 내보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우리는 나 자신도 모르게 내뱉곤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경계로, 가까운 데로부터 ‘예의’를 지킬 것을 말씀하고 "威如之吉(품위를 늘 지켜갈 때에 결국 행복함에 이른다)"을 말씀한 백강 이경여 선생의 지혜의 말씀을 소개한다.
1. 안을 다스리는 법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아내를 예법(禮法)으로 대하여 집과 나라를 거느린다.’ 하였고, 《대학(大學)》에 이르기를 ‘집이 정제되고서 나라가 다스려진다.’ 하였으니, 집을 정제하는 것은 인륜의 시초인 부부 관계를 바루는 것이 근본이고 제왕의 덕화에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임금은 밖에 바르게 위치하고 후비(后妃)는 안에 바르게 위치하여 안의 말은 문지방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밖의 말은 문지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여 안과 밖의 한계를 엄하게 하고 올바르지 못한 지름길을 막아야 합니다. 좌우의 궁첩들이 엄숙하고 경외하여 감히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고 인척(姻戚)들이 위엄을 두려워하여 격리됨으로써 연줄을 얻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것이니, 이것이 안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중략~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주역(周易)》 가인괘(家人卦)의 ‘위엄으로 하면 길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돌려 구하기를 올바름으로 하기 때문이다.’는 말을 체득하여 마치 태양이 하늘 중앙에 뜨자 뭇 그늘이 저절로 스러지고 바른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굽은 지름길이 절로 막히듯 궁중을 숙청(肅淸)하소서. ~중략~ 그리하여 거룩한 전하의 행동을 만물이 모두 보게 하소서.“
~ 1631년, 인조9년 10월3일 백강상공 상차문(上箚文)중에서
2. 위여지길(威如之吉)
백강상공은 가장 근본이 되는 인간관계인 제가(齊家)와 관련하여 ‘위여지길(威如之吉)’을 강조하였다.
“이른바 제가(齊家)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자(周子)의 말에 ‘집에서 어려우면 천하에서 쉬워지고 집에서 친근하면 천하에서 멀어진다.’ 하였는데, 대개 집안에서는 은애가 늘 의리를 가리므로 소원하면 공도(公道)가 행해지기 쉽고 친근하면 사애(私愛)에 빠지기 쉬우니, 이것이 어렵게 하는 까닭입니다. 이 어려운 것을 먼저 하지 않고서는 쉬운 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경(易經)》 가인괘(家人卦)에 ‘위엄이 있으면 마침내 길(吉)하다(威如之吉).’ 하였으며, 그 상(象)에 또 ‘위엄이 있는 것이 길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돌이키는 것을 뜻한다.’ 하였습니다. 은의가 도탑더라도 윤리는 바루지 않을 수 없고, 정의가 통하더라도 안팎은... 정숙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1653년 효종 4년 7월2일 백강 상공의 상차문(上箚文)중에서
북극에는 “호저”라는 ‘고슴도치과’의 동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호저는 북극이 굉장히 추우니까 고슴도치들끼리 가까이 껴안는다고 한다. 그런데 고슴도치들은 표면에 가시가 달려있어, 서로 따가워서 껴안을 수가 없어서 바로 물러선다. 그런데 너무 물러서면 추우니까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가까이 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하나의 지혜가 나오는 것이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가시로 찌르는 것도 피하면서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해주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인간한테도 호저, 고슴도치의 관계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동기 / 인문경영연구소 대표).
호저의 이러한 행태는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위한 “위여지길(威如之吉)”의 철학이 내포하는 의미 중 일정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9. 4.27.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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