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천리(天理)를 따라 인륜(人倫)을 세우며 살아온 사람은 죽을 수도 있는 위험스러운 상황이 닥쳐올지라도 자기의 일생이 바른 길을 따라 살아온 삶이기에 대범(大凡)하고 당당할 수가 있으며, 나아가 주변의 어려운 여건에 대해서도 오히려 감사할 줄을 아는 겸허(謙虛)한 인격을 갖추게 된다.
이런 고결(高潔)한 기품(氣品)이 잘 드러나는 한시(漢詩) 한수(首)를 소개한다. 신임사화(辛壬士禍)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流配)되어 처형(處刑)된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 중의 한 분인 몽와 김창집 선생의 시이다.
바다를 건너며[도해(渡海)]
푸른 바다에 풍파 없어 잔잔하다마는
내 충신(忠信)이 교타를 감동시켜 그런 것이랴
작은 배로 탈 없이 잘 건너고 나서야
청회수는 멱라수와 다르다는 말 실감 하겠네
碧海風恬不起波 벽해풍념불기파
敢言忠信感蛟鼉 감언충신감교타
輕舟穩涉能無恙 경주온섭능무양
始驗淸淮異汩*羅 시험청회이멱라
*羅 : 원문 氵+羅
- 김창집(金昌集, 1648~1722), 『몽와집(夢窩集)』 권4 「남천록(南遷錄)」
조선 후기의 대신인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 1648~1722)의 시이다. 김창집의 자는 여성(汝成)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고,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의 장남이다. 영의정을 지냈으며, 이른바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의 한 사람이다.
김창집 등 대신들을 중심으로 한 노론(老論)은 경종 1년(1721)에 연잉군(延礽君)의 왕세제(王世弟) 책봉과 대리청정을 추진하여 성사시켰는데, 곧바로 명분을 앞세운 소론(少論)의 반격으로 실각하여 귀양을 가게 되었다. 연잉군은 영조(英祖)가 왕자일 때의 봉호(封號)이다. 이 사건을 신축옥사(辛丑獄事)라고 하는데, 김창집은 이 당시 74세의 고령으로 거제도(巨濟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교타(蛟鼉)는 바다나 강 속에 살면서 뱃길을 방해한다고 전해지는 수중 동물들로, 이들의 방해 없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된 안도감이 시에서 느껴진다. 이 시는 북송(北宋) 때의 곧은 신하인 당개(唐介)의 시를 점화(點化)한 것이다.
당개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 춘주 별가(春州別駕)로 좌천되어 가면서 회수(淮水)를 건널 때였다. 거센 바람에 배가 곧 뒤집힐 듯한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초연히 시를 읊었다. ‘좌천되어 회수를 건널 때 바람이 배를 뒤집을 듯하여 짓다.’라는 뜻의「적관도회풍욕복주이작(謫官渡淮風欲覆舟而作)」라는 시이다.
성스러운 송나라는 미친 초나라가 아니니 / 聖宋非狂楚
맑은 회수도 멱라수와는 다를 테지 / 淸淮異汩羅
한 평생 충신을 지키고 살았으니 / 平生仗忠信
오늘 풍파에 내맡긴들 어떠리 / 今日任風波
어지러운 초나라 때는 충신 굴원(屈原)이 모함을 받고 조정에서 쫓겨나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기도 하였지만, 송나라는 성군의 나라이고 자신은 충신을 지키며 살았기 때문에 그런 억울한 일은 없으리라는 당당한 기개가 담겨 있다. 김창집은 이 시의 의사를 차용하면서도, 자신이 무사히 바다를 건넌 것은 자신보다는 조선이 성군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겸손해하고 있다. (2018.12.19.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책’에서, 권경열 번역)
무릇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날 때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만 한다. 이 세상의 삶은 아침에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이슬처럼 쉬이 끝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기꺼운 마음으로 거리낌 없이 평화롭게 떠나갈 수 있으려면 평소에 천리(天理)를 찾고 하늘을 섬기는 도리(道理)에 따라 올곧게 살아가야만 그 큰 복(福)을 누릴 수가 있으리라.
2018.12.30.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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