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 구제기 소인 구제인(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서구 사상가 죤 스튜어트 밀은 “타인의 성격이나 행동은 결정론(宿命論)적으로, 그러니까 그 사람의 성장배경과 상황 탓이라고 너그럽게 봐주고 자신은 자유의지의 존재로 봐서 스스로의 언행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평가하고 책임지라”고 했다.
이 말은 공자가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와 그 의미가 같다고 본다.”~고려대 서지문 영문학 교수, 문화일보 칼럼 2012.2.
서양과 동양에서 모두 자기 스스로에게는 그 언행과 생각에 대하여 엄격한 기준으로 관리하여 나가고, 타인들에 대하여는 그의 배경과 주어진 여건 등을 고려하여 관대하게 이해하고 수용하여 갈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은 사실상 스스로를 훈련하고 인격을 성숙시켜가는 길로 생각되며 그런 맥락에서 죤 스튜어트 밀도 자신을 자유의지의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매우 어려운 길이다.
아마도 신독(愼獨: 홀로 있는 시간에도 삼가고 조심하여 道에 어긋남이 없음)을 실천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뼈를 깎는 마음과 몸의 修行이 먼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마음에 타고난 罪性을 완전히 극복할 수가 없다. 이것이 내가 살아오며 뼈저리게 체험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부터조차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는 이 罪意識에서 해방되어야만 삶을 참으로 당당하고 값있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인데, 그 길은 예수그리스도의 값없이 주는 은혜(grace)와 구원(redemption)이외에는 달리 찾을 길이 보이질 않는다. 나 스스로의 수양과 精進으로는 도저히 이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고백이다. 마틴 루터의 고백이기도 하다.
석가모니의 慈悲 정신이나, 孔孟의 仁의 정신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의 사랑 정신이나, 모하메드(Mohammed)의 약한 자에게 값없이 베푸는 정신 등 모두가 주변의 타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관대하고 베푸는 삶을 살라는 의미에서는 동일하다. 이를 실천하는 자가 참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로 그들 모두의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또한 결코 쉽지가 아니하다. 좁고 부족한 소견에서 나오는 끝없는 이기심(利己心), 공명심(功名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늘 좋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인격을 닦고, 기도하고 실천에 노력하는 생활을 이어가는 수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어 보인다.
이러하니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What a wretched man I am!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of death?)” [로마서 7:24] ~ 위대한 사도 바울(St. Paul)의 독백이다.
2012. 3. 6.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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