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인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차분히 생각해보면, 많은 이들이 갈구하는 부귀(富貴)와 공명(功名)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환상(幻想) 속에 있는 것이며, 또한 내 육신(肉身) 까지도 내 것이 아니고 잠시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빌어 가진 형체(形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며, 그리고 사람이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을 여관으로 해서 잠시 나그네처럼 머물다가 가는 것이란 것도 안다.
그런즉 우리는 세상일들 하나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깨달아 그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참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肉身)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 그런즉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被造物)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6-17절). 이는 사도 바울(Apostle Paul)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불변의 진리를 깨닫고 새로운 희망에 가득차서 한 고백이다.
대자연의 실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배우자·부모·형제자매는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들이 다 하나님의 창조물로 나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니, 사람이 이와 같은 경지(境地)를 진실로 깨달았다면 곧 하늘 아래의 모든 피조물을 두루 사랑하여 세상의 여러 가지 짐들을 스스로 짊어질 수가 있으며, 또한 세속적인 사사로운 욕망(慾望)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불변의 진리의 세계, 참된 자유의 세계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새 계명(誡命)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弟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장 34-35절).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유언(遺言)처럼 우리에게 남기신 당부(當付)의 말씀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바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웃의 악(惡)과 불의(不義)를 용납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의(義)와 인륜도의(人倫道義)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바로 이웃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길이다. 만일 악과 불의를 저질은 이웃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성령(Holy Spirit)이 이에 대한 응답으로 대응방도(對應方道)를 알려줄 것이다.
2025. 2.18.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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