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을 먼저 높이고 다른 학문을 연구하라
“옛사람이 학문을 논할 적에 다만 덕성(德性)을 높이고 학문을 쫓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덕성을 높이는 것은 마음을 간직하고 기르는 한 가지 일에 지나지 않고 학문을 쫓는 것은 학문을 강론하는 한 가지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옛날에 장재(張載, 宋의 학자) 가 말하기를 ‘움직임에 법도가 있고 말에 교양이 있고 낮에 하는 것이 있고 밤에 얻는 것이 있고 숨쉴 때에 기르는 것이 있고 눈깜짝할 때에도 지키는 것이 있다.’ 하였는데, 이것이 덕성을 기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정이(程頤, 宋의 학자)가 말하기를 ‘오늘 한 가지 일을 연구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연구하여 오래도록 쌓아 익히면 자연히 도리를 잘 알게 된다.’ 하였는데, 이것이 또한 학문의 공효를 말한 것입니다.[古人論學, 只曰尊德性、道問學, 尊德性不過曰存養一事, 道問學不過曰講學一事。 昔張載有言曰: ‘動有法、言有敎、晝有爲、宵有得、息有養、瞬有存,’ 此非尊德性之事乎? 程頤有言曰: ‘今日格一事, 明日格一事, 積習已久, 自然貫道,’ 是亦道問學之功也]”
위의 글은 죽서 이민적 선생이 1671년 9월18일 현종임금에게 학문하는 기본자세와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연구함으로서 학문하는 태도를 보이기 이전에 먼저 사람으로서 지녀야할 덕성(德性)을 기르는 일에 힘쓰면서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주제의 연구에 돌입하여 실적을 쌓아나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간이 지녀야할 덕성의 확충이 없는 다른 연구는 오히려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도 해로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죽서 이민적 선생은 덕성을 기르는 공부에 대해 설명하기를 ‘움직임에 법도가 있고 말에 교양이 있고 낮에 하는 것이 있고 밤에 얻는 것이 있고 숨쉴 때에 기르는 것이 있고 눈깜짝할 때에도 지키는 것이 있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러한 덕성을 확충하는 교육에 과연 충실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건대 오늘날 우리나라의 사회가 이토록 혼탁하고 위태롭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덕성을 확충하는 교육을 너무도 소홀하게 여기고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연구들에만 몰두하면서 오랜 세월을 지내온 데에 크게 기인한다고 본다. 다수의 국민들이 그 인간됨이 얕고 바르게 잡혀있지 못하니 그 외의 연구의 성과들은 빛을 발하기 어렵고 오히려 해독이 될 수가 있는 것인데, 오늘날 우리사회는 이러한 학문의 역기능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얼마 전에 배운 사람들끼리 모여서 배타적인 이권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이 한국의 부패상이라는 외국의 연구보도가 있었으니 이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도 있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공산·전체주의 사상이 뒤늦게 우리나라에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교육의 기반이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형편이 대통령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인 상태이니 이제는 양식 있는 국민들의 외침과 행동이 절실하다.
2024. 5.21.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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