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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아끼려 천성(天性)을 바꿔야하나

jookwanlee 2024. 5. 18. 04:00

목숨 아끼려 천성(天性)을 바꿔야하나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고고한 향기를 발하며 피는 꽃이 국화다. 서리가 그 꽃의 색깔을 지울 수 없고 삭풍(朔風)이 그 꽃잎을 지게 할 수 없으니 국화는 버젓한 오상고절(傲霜孤節)이다.

 

남송의 문인 정사초는 국화의 이런 높은 품격을 시(詩)로 읊었다.

 

‘차라리 향기를 안고 가지 끝에서 죽을지언정

어찌 부는 북풍에 휩쓸려 꽃잎을 떨구겠는가’

 

하지만 보라, 여기 그림 속 국화는 얼마나 가여운가를. 거친 바윗돌 앞에 국화는 힘에 벅찬 꼴로 서있다. 모가지는 죄다 꺾이고 잎사귀는 모다 오그라들었다. 두 그루 힘이 부치는 가지는 곁에 선 대나무에 기대 버틸 따름이다. 쇠망하는 국화일러니 향기인들 고스란할까. 말라비틀어진 모습은 가엽다 못해 가슴이 아리다. 화면 귀퉁이에 사연이 있으니, ‘남계(南溪)에서 겨울날 우연히 병든 국화를 그리다’ 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팔팔한 국화 다 놔두고 굳이 시든 꽃을 그린 이는 누군가. 바로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능호관 이인상이다. 그는 함양의 옛 이름인 사근도에서 찰방 자리를 그만둘 무렵, 명품 국화인 조홍(鳥紅)을 심었다. 오래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 보니 국화는 잔향을 품은 채 애처로이 시들고 있었다. 작가 이인상은 다시 일어서지를 못하는 국화를 옹호한다. 그는 바짝 마른 붓질로 사위어가는 국화를 그린 뒤 아는 이에게 편지로 알리기를 ‘목숨을 아끼려는 구실로 천성(天性)을 바꿔야 하는가’라고 했다. <2010. 10.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여기 작가가 그려낸 애처로운 국화처럼 국화는 살아남고자 구차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말라비틀어지고 단명할지언정 절개를 저버리는 일이 없다. 작가 이인상은 구차하게 일상의 이해타산으로 쉽게 지조(志操)를 저버리는 세상의 풍조를 꾸짖는 듯하다.

 

국화의 향기와 명성은 결코 절개를 저버리지 않는 오상고절의 고매한 품성에 기인한 것이니, 하물며 사람의 향기와 명성이 오래가는 것은 그의 지조(志操) 있는 인격과 행실의 향기 때문인 것임을 굳이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작가 능호관 이인상의 이런 고매한 성품은 그가 남긴 ‘모루명(茅樓銘)’에 잘 들어나 있다.

 

작은 누정(樓亭)에 나를 담으니,

고요히 지내면서 명문(銘文)을 짓는다.

문장은 실(實)함에서 들뜨지 않고

행실은 명예를 좇지 않는다.

말과 행동은 속됨에 들지 않고

독서는 경전(經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담담함으로 벗을 얻고

옛 것을 스승으로 삼는다.

실천하매 천명(天命)을 어기지 않으니

자나 깨나 맑음 뿐이로다.

 

<능호관 이인상 선생이 자신의 ‘종강모루(鐘岡茅樓)’에 부친 모루명(茅樓銘)>

 

2024. 5. 18. 素澹

그림 : 능호관 이인상 선생, ‘병든 국화(病菊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