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도리(道理)
“선비는 옛 성현들로부터 배우며 예의를 존중하고, 비록 곤궁하여 헐벗고 굶주린다 하여도 사악한 길에 들어서서 탐욕을 부리지 않으며, 송곳을 세울 땅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나라를 지탱하는 대의(大義)에는 밝다. 소리쳐 불러도 아무도 응해주지 않지만, 그러나 만물을 풍부하게 하고 백성들을 기르는 법에는 통달해 있다. 비록 가난하여 비새는 집에 숨어 살아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진실한 도리(誠道)’가 존재하기 때문이다.”[순자(荀子) 유효편(儒孝篇)]
생각건대 순자가 말한 ‘진실한 도리(誠道)’는 즉 ‘하늘의 도리(天道)’이며 ‘하늘의 도리(天道)’는 ‘민심(民心)’과 ‘자연의 이치’ 그리고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攝理)’로 대변된다.
이와 관련, 1631년(인조 9년) 10월 3일 백강 이경여 선생 등이 국정(國政)에 임함에 있어 ‘하늘의 도리(道理)’를 살필 것을 가장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상차(上箚) 하였다.
“임금은 높은 지위에 있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두려워 할 것은 하늘뿐입니다. 하늘은 이치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 좋아하고 미워함을 사사로운 정(情)에 따르므로 상하가 막혔으니, 하늘의 노여움이 그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게 없습니다. 재앙이나 복은 자신이 초래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몸을 기울여 덕을 닦으소서.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으로부터 궁정의 사람 없는 곳과 동작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이르기까지 삼가 공순하고 공경히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천명을 스스로 헤아려 천리(天理)로써 보존하고 자연의 법칙으로써 움직여, 공경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를 마치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 힘써 성의(誠意)를 쌓아 기필코 즐겁게 되시도록 하는 것과 같이 하소서.”
백강 이경여 선생이 ‘하늘의 도리’를 이처럼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가르침 그리고 자연의 이치를 두루 아우르는 진리 그 자체를 삶의 기준으로 할 것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의 가르침도 한마디로 줄이면 ‘하늘의 도리’를 섬기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바 이는 다음과 같이 축약하여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죄(罪)사함을 받고 영생(永生)을 얻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기도하여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늘 푸르러 하늘의 복(福)을 받는 자가 되고, 성령(Holy Spirit)의 인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고,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의 인격으로 정제(淨濟)하여 크고 작은 일들을 이행하며, 나아가 이웃에게 봉사하고 그 사랑과 도(道)를 전파하는 일들에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야한다. 이러한 모든 일들의 뿌리기 됨은 ‘사랑’이니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들도 제 몸처럼 사랑하며 또한 자신의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러한 복된 일들을 이루어 가려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하여야한다. 이를 소홀히 하면 우리도 부지부식(不知不識)간에 잘못되어 하나님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전락하여 화(禍)를 당할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한다.”
아울러 백강 이경여 선생은 ‘하늘의 도리’에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하다고 보아 학문을 하는 목적으로 인심(民心과 人心)을 바르게 살필 것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學貴多聞 且闕疑 升高致遠 有前期(학귀다문 차궐의 승고치원 유전기)
千塗萬轍 同歸一 要把人心 戒入危(천도만철 동귀일 요파인심 계입위)
학문은 많이 듣고 널리 물어 의아(疑訝)한 것을 아는데 귀함이 있는 것이니, 그 배움이 높고 멀리 이르고자 하면 먼저 기약함이 있어야 한다.
학문하는 길은 천 가지 길과 만 가지 수레바퀴가 있으나 궁극은 하나이니, 반드시 인심(民心과 人心)을 옳게 파악해서 위험한 길에 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2024. 3.31.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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