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상대로 살자
손해 보더라도 착하게
친절하게 살자.
상처받더라도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살자.
뒤처지더라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살자.
우리 삶은 사람을 상대하기보다
하늘을 상대로 하는 거다.
우리 일은 세상의 빛을 보기보다
내 안의 빛을 찾는 거다.
위는 박노해 시인의 “참사람이 사는 법”이란 시(詩)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영적인 성장을 꾸준히 도모해가야만 한다. 세상사는 덧없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길이다. 우리 조상님들 중에는 이런 길을 가기위하여 자연의 이치, 하늘의 섭리를 탐구하면서 오로지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살아가신 훌륭하신 분들이 있다.
조선 중기 명신 백강 이경여 선생도 그 중의 한분인데 그의 사상은 “하늘을 섬기는 도리(道理)”와 “마음의 수양(修養)”으로 집약할 수가 있다.
이는 오늘날까지의 모든 종교 철학을 아우르는 큰 가르침을 제시하신 것으로 생각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당대에 수많은 학자들이 이기일원론과 이원론, 사단칠정론 등 수많은 설을 주장했으나, 이는 진리의 일부만을 내포하는 것으로 이것이 참 진리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백강 선생의 이 가르침은 오늘날의 모든 철학은 말할 것 없고,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유교의 교리를 두루 아우르는 큰 가르침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1631년(인조9년) 10월 3일 백강 이경여 선생 등이 “하늘을 섬기는 도리(道理)”를 가장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상차(上箚) 하였다.
“임금은 높은 지위에 있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두려워 할 것은 하늘뿐입니다. 하늘은 이치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 좋아하고 미워함을 사사로운 정(情)에 따르므로 상하가 막혔으니, 하늘의 노여움이 그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게 없습니다. 재앙이나 복은 자신이 초래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몸을 기울여 덕을 닦으소서.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으로부터 궁정의 사람 없는 곳과 동작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이르기까지 삼가 공순하고 공경히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천명을 스스로 헤아려 천리(天理)로써 보존하고 자연의 법칙으로써 움직여, 공경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를 마치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 힘써 성의(誠意)를 쌓아 기필코 즐겁게 되시도록 하는 것과 같이 하소서.”
백강 이경여 선생이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이처럼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가르침 그리고 자연의 이치를 두루 아우르는 진리 그 자체를 우리들의 삶의 기준으로 할 것을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마음의 수양(修養)”에 대하여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대왕에게 성심(聖心)을 기르는 것을 가장 소중한 일로 여기라고 하면서, 신독(愼獨) 즉 ‘홀로 있을 때라도 마음가짐과 행동이 도리(道理)에 어그러짐이 없어야 할 것’을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지킬 것을 말씀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수양하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 마음의 수양이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효종4년 1653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 선생, ‘재변(災變)극복을 위한 상차문(上箚文)’에서>”라고 하였다.
아울러 백강 이경여 선생은 사람의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보아 학문을 하는 목적으로 마음의 수양은 물론이요 아울러 주변의 민심(人心)을 바르게 살필 것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은 시(漢詩)를 남겼다.
學貴多聞 且闕疑 升高致遠 有前期(학귀다문 차궐의 승고치원 유전기)
千塗萬轍 同歸一 要把人心 戒入危(천도만철 동귀일 요파인심 계입위)
학문은 많이 듣고 널리 물어 의아(疑訝)한 것을 아는데 귀함이 있는 것이니, 그 배움이 높고 멀리 이르고자 하면 먼저 기약함이 있어야 한다.
학문하는 길은 천 가지 길과 만 가지 수레바퀴가 있으나 궁극은 하나이니, 반드시 민심(人心)을 옳게 파악해서 위험한 길에 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2024. 3.26. 素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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