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갈등극복의 방안

jookwanlee 2024. 3. 8. 17:10

갈등극복(葛藤克服)의 방안

 

우리나라 국민성이 좋은 점이 많으나 시정해야할 점이라면 손꼽히는 것이 아마도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하고 반목하여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는 폐단일 것이다.

 

이런 갈등극복과 관련, 효종 4년(1653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의 “재난극복을 위한 상차문(上箚文)”에는 다음과 같은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이른바 붕당을 없애야 한다[去朋黨]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뿌리박은 것이 이미 굳고 여파가 점점 퍼지므로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갓 그 이름을 미워하여 모두 없애려 하면 백마청류(白馬淸流)의 화(禍)1)가 될 것이고, 양편을 다 보존하면서 조정하려 하면 우이(牛李)가 서로 반목한 일2) 이 될 것입니다. 오직 옳은 것을 옳게 여기고 그른 것을 그르게 여기며 어진 자를 어질게 여기고 악한 자를 악하게 여기며 덕(德)을 헤아려 지위를 주고 재능을 헤아려 벼슬을 맡기며 죄가 있는 자는 형벌하고 착한 일을 한 자는 상(賞)을 주어 공정하고 밝은 것이 다 지극하고 피차가 모두 잊을 수 있다면 사물이 각각 마땅한 데로 돌아갈 것이니, 어찌 사사로이 붕당을 맺을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피차를 견주어 먼저 색목(色目)을 나눈다면, 군자는 그 뜻을 행할 수 없고 소인은 그 사사로운 것을 들일 수 있으므로 혐의스러운 것을 염려하여 자취를 감추거나 아부하여 더러워질 것이니, 또한 나라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서경(書經)》에 ‘백성에 간사한 무리가 없고 관리가 사욕에 치우친 덕을 가진 자가 없는 것은 임금이 표준을 세우기 때문이다.’ 하였고, ‘치우침이 없고 기욺이 없으면 표준에 모여 표준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였는데,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평탄하며 기울지 않고 넓고 멀어서 사사로운 것을 끼우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

 

[註 1]백마청류(白馬淸流)의 화(禍) : 당애제(唐哀帝) 때에 주전충(朱全忠:뒤에 후량 태조(後梁太祖)가 됨)이 장정범(張廷範)을 태상경(太常卿)으로 삼는 것을 배추(裴樞)가 반대하다가 좌천되어 활주(滑州)로 가는데 주전충이 백마역(白馬驛)에 사람을 보내어 배추를 죽여 시체를 황하(黃河)에 던져 넣게 하였다. 당초에 주전충의 좌리(佐吏) 이진(李振)이 “이들은 스스로 청류(淸流)라 하니 황하에 던져 영구히 탁류가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하였다.<당서(唐書) 배구전(裴樞傳)>.

[註 2]우이(牛李)가 서로 반목한 일 : 당(唐)나라 목종(穆宗) 때부터 무종(武宗) 때까지 약 40년 동안 우승유(牛僧孺)·이종민(李宗閔) 등과 이길보(李吉甫)·이덕유(李德裕) 등이 서로 붕당을 만들어 반목한 일.

 

또 다른 갈등극복의 방안은 역사상 첫 번째 교회로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은 이후 시작된 예루살렘교회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교회가 시작되는 즈음에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에도 불평불만이 쌓이고 갈등이 일어나더니 급기야는 파당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 사정을 사도행전 6장이 시작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사도행전 6장 1절).

 

예루살렘교회에 교인 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은연중에 두 파벌이 생겨나게 되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이란 양대 파벌이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시작되는 초창기에서부터 모인 주류에 해당한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늦게 전도 받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젊고 유식한 인재들이 많았을 것이다. 갈등의 시작은 교회헌금으로 가난한 교인들을 돕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신주류격인 헬라파 유대인들이 볼 때에 구주류격인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하는 처사가 도무지 공평하지를 못한 것처럼 보였다. 헌금으로 과부들을 구제하는데 자신들과 가까운 과부들만 돕고 나중 들어온 헬라파 유대인에 속한 과부들은 번번이 도움에서 제외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불만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런 불만이 그릇된 방향으로 자라게 되면 분쟁과 분열의 씨앗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사도들이 성숙된 자세로 일을 처리하였다. 지혜로운 처신으로 교인들 사이에 일어난 갈등과 분열의 분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고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사도들은 세 가지 원칙으로 접근하여 갈등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사도행전 6장 2~4절). 사도들이 갈등을 극복하는 데에 적용한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해결하였다. 둘째는 개방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접근하였다. 셋째는 본질적이고 영적인 해결을 하였다.

 

사도들이 훌륭하였던 것은 갈등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하였다. 갈등을 일으키는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려들지를 않고 사도들 자신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교회가 급작스럽게 부흥하여 관리,접대,구제 등에 일이 많아지자 지도자들인 사도들은 그런 일들에 대한 행정처리에 매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났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 오는 것은 은혜를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오는 것인데 사도들이 행정관리 잡무에 매이게 되니 그런 영적인 본질에 채움을 받지 못한 교인들이 불평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사도들은 문제의 본질을 그렇게 이해하였다. 그래서 교인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개방적으로 공개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리고는 일곱 사람을 뽑는 기준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영적으로 바로 선 사람이고, 둘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다. 이 두 가지 기준을 따라 신도들이 일곱 일꾼을 뽑으니 이들이 바로 교회사상 첫 번째 집사인 일곱 집사들이었다. 이런 절차를 밟는 동안에 신도들 중에 도사리고 있었던 오해와 불신, 갈등과 분열은 말끔히 사라지고 무리가 기쁨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道)에 복종하니라.”(사도행전 6장 7절).

 

이런 사도들의 갈등극복의 영적 지도력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친히 이르신 말씀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나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라”(마가복음 10장 42절-45절).

2024. 3. 8. 素淡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상과 내세의 천국  (1) 2024.03.11
급격한 이상주의와 탐욕주의를 경계하라  (0) 2024.03.10
탐욕의 절제  (0) 2024.03.05
영원한 가치와 행복  (0) 2024.03.03
섣불리 생각지 말자  (0) 202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