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신데렐라 신빈김씨
세종의 여인 비구니가 되다.
신빈김씨(1404∼1464년). 세종대왕의 후궁이다.
본관은 청풍이며 첨지중추원사 김원(金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예의가 있어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열 세살에 입궁하여 6남 2녀를 두었다. 수양대군을 업어 기르고 세종의 막내인 영응대군을 양육했다.
소헌왕후와의 사이가 좋았고 세종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온화하게 아름다운 덕으로 인후한 공자를 많이 낳았습니다.
왕후를 공경하고 여러 후궁과도 잘 지내 왕가의 번성에 큰 일을 하였습니다.
매사를 은혜롭게 하고 겸손함으로써 왕실을 화목하게 했습니다.
임금이 탄 수레가 처음 멈추니 무덤 앞에 선 돌짐승이 반겼습니다.
바라건데 이 잔을 흠향하시고 세대가 아득하다 하지 마소서." 「홍제전서」
한 후궁을 300년 뒤의 왕이 추모한 내용이다.
후궁은 조선 4대 왕인 세종대왕의 부인인 신빈 김씨이고, 왕은 조선의 22대 군주인 정조다.
1797년 8월17일 정조는 생부 사도세자의 능에 참배하기 위해 화성인 수원에 가다 인근에 신빈 김씨의 묘가 있음을 듣는다.
왕실을 튼튼하게 한 세종을 모범으로 삼으려던 정조는 신빈 김씨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신빈 김씨에게 은혜를 입은 처지이기도 했다. 신빈 김씨의 세번 째 아들인 밀성군의 후손들은 대대로 노론의 사상가였다.
특히 조선의 명재상으로 선비들의 표상이었던 백강 이경여는 밀성군의 6대손이고, 노론 4대신으로 경종 때 연잉군(영조)을 보호하다 사사된 이이명과 이건명은 밀성군의 8대손이었다.
영조는 정조의 할아버지다. 따라서 이이명과 이건명 등의 목숨을 던진 충절이 없었다면 임금 정조는 생각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정조는 화성 남양리를 지날 때 승지를 불렀다.
"신빈 김씨의 묘에 치제를 하라."
승지는 임금을 명을 받아 그녀의 묘에 술을 올렸다. 그리고 겸손한 인간성을 칭송했다.
300년 뒤의 임금에게도 기억되는 그녀의 인간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편단심이었다.
[후략]
"세종대왕 가문의 오백년 야망과 교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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