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재정기심(修身在正其心)
대학(大學) 전문(傳文) )7장에서 이른바 ‘몸을 닦는 방법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다(修身在正其心)’라고 한 것은, “마음에 노여움이 있으면 마음이 바를 수 없고, 두려움이 있으면 마음이 바를 수 없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마음이 바를 수 없고, 걱정이 있으면 마음이 바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다른 데로 쏠려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상태로는 언행이 제대로 될 리 없으니, 그래서 몸을 닦는 방법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항상 바르게 유지 할 수가 있는가?
이에 대해 솔로몬은 잠언 3장에서 말하기를 “인자(仁慈)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네 명철(明哲)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생활습관에 대하여 다윗은 시편 1편에서 말하기를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였다.
한편 이에 대해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 4년(1653년) 7월2일 상차문(上箚文)에서 마음을 닦는 공부가 가장 소중한 것으로 항상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 이른바 강학(講學)은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2022. 8.31. 素淡
* 대학(大學) 전문(傳文) 7장 소위수신재정기심자(所謂修身在正其心者) *
所謂修身소위수신이在正其心者재정기심자는
心有所忿懥심유소분치則不得其正즉불득기정하고有所恐懼유소공구則不得其正즉불득기정하고
有所好樂유소호요則不得其正즉불득기정하고有所憂患유소우환則不得其正즉불득기정이니라
心不在焉심불재언이면視而不見시이불견하며聽而不聞청이불문하며
食而不知其味식이불지기미니라
此謂修身차위수신이在正其心재정기심이니라
이른바 ‘몸을 닦는 방법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노여움이 있으면 마음이 바를 수 없고, 두려움이 있으면 마음이 바를 수 없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마음이 바를 수 없고, 걱정이 있으면 마음이 바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다른 데로 쏠려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상태로는 언행이 제대로 될 리 없으니, 그래서 ‘몸을 닦는 방법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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