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음풍농월

jookwanlee 2022. 3. 23. 11:57

음풍농월(吟風弄月)

 

현대사회는 가면 갈수록 각박해져 우리로 하여금 자연 속에서 노닐며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멋과 여유로움을 점점 더 잃어버리게 만든다.

 

이 음풍농월에 대해 논어(論語)에서는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면서 노래를 읊조리는 일이다”라고 줄여서 표현하였다.

 

이렇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음풍농월하는 생활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릴수록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황폐해지며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게 되고 불행해진다. 하나님은 흙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으니 자연은 우리의 고향과도 같기 때문이리라. 우리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과 만나는 일 조차도 이렇게 여유로움 속에서 묵상하고 기도할 때 샛길로 새지 않고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있다.

 

정호(程顥)는 <봄날 우연히 읊조리다(春日偶成)〉에서 “엷은 구름에 산들바람 정오가 가까운 때, 꽃 찾고 버들 따라 앞개울을 건너노라.(雲淡風輕近午天, 傍花隨柳過前川)”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꽃을 찾고 버들을 따르는 일이 바로 음풍농월이라고 하겠다. 또 “정이(程頤)는〈가을날 우연히 읊조리다(秋日偶成)〉에서 ”한가로와 무슨 일이든 여유롭지 않음이 없으니, 자다가 일어나면 동창에 붉은 해가 떠오른다.(閒來無事不從容, 睡起東窓出日紅)”라고 하여 더욱 음풍농월의 깊은 멋을 말하였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더욱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자.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로 하나님의 숨결과 섭리(攝理)가 묻어나고 우리에게 생명력을 더해주는 삶의 고향이다. 우리가 죽어 영혼은 하나님 앞으로 갈 것이나 육신은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음풍농월의 여유로움을 즐기면서 살아가자.

 

2022. 3.23. 素淡

 

“어제는 흙담이 면전에 서 있고, 오늘 아침에는 대나무 창이 해를 향해 열렸네.(昨日土墻當面立, 今朝竹牖向陽開)” ~ 주희(朱熹)의〈범석부의 경복승개창시에 차운하다(次范碩夫題景福僧開窓韻)〉에서

 

“묵정밭에는 호마(胡麻)를 심고, 초가(草家)를 소나무 그늘에 지었다. 진중하고 무심한 사람은, 쓸쓸한 집에서 밝은 달을 희롱하네.(畬田種胡麻, 結草寄松樾, 珍重無心人, 寒棲弄明月)” ~ 주희의〈서료(西寮)〉전문인데, ‘요(寮)’가 바로 창이다.

 

“북창(北窓)에서 신음하니, 기운이 답답하여 풀리지 않네. 내 책을 내가 읽으니, 병이 낫는 듯하구나.(呻吟北窓, 氣欝不舒. 我讀我書, 如病得蘇)” ~ 주희의〈지락재명(至樂齋銘)>의 앞부분이다.

 

“환한 창가 궤안(几案)에 기대어, 맑은 낮에는 화로에 향을 피우고, 책을 펴고 엄숙하게 나의 천군(天君)을 마주한다.(明牕棐几, 清晝爐薰, 開卷肅然, 事我天君)” ~ 진덕수(眞德秀)의〈심경찬(心經贊)〉의 마지막 부분이다.

 

명(明)의 학자 여곤(呂坤)은 “천욕(天欲)이 있고 인욕(人欲)이 있으니, 음풍농월하면서 꽃을 찾고 버들을 따르는 일은 천욕이다. 천욕은 없어서는 아니 되니, 없으면 적막하다. 인욕은 있어서는 아니 되니, 있으면 더러워진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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