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8조 진달 백강상공

jookwanlee 2021. 9. 9. 19:00
8조 진달, 1631년 인조9년, 백강 이경여 선조

신미년(1631, 인조9)에, 백강 이경여 선생은 부제학으로 소환되었다.

그해 겨울, 동료들과 차자를 올려 8조를 진달하였다. 첫째는 하늘을 공경하는 일[敬天]이고, 둘째는 백성을 돌보는 일[卹民]이며, 셋째는 의견을 경청하는 일[聽言]이고, 넷째는 인재를 등용하는 일[用人]이며, 다섯째는 검약을 숭상하는 일[崇儉]이고, 여섯째는 종실을 돈독히 하는 일[敦宗]이며, 일곱째는 배움에 나아가는 일[進學]이고, 여덟째는 대궐 안을 바로잡는 일[刑內]이었다.

백성을 돌보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민심의 향배에 따라 나라가 보존되거나 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담당 관원이 위로 주상의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정책 시행을 잘못하여 작은 비용을 아끼다가 큰 신의를 잃는가 하면, 세세한 사무를 먼저하고 원대한 계획은 뒤로 돌리고 있습니다. 조세를 탕감해 준다는 은혜가 도리어 신의를 잃는 결과가 되고, 변통한다는 정책이 끝내 분란의 단서만 만들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훈신(勳臣)들은 각자 자기 생각만 하며 백성들의 농지를 다투어 빼앗고, 내수사(內需司)에 투속(投屬)하는 폐단은 이전 시대의 풍습이 점차 불어나고 있습니다. 각 아문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폐단에 대해서는 안팎에서 원성이 자자한데, 여러 궁가(宮家)에서 빚을 징수하는 것은 이보다 더욱 심합니다. 이웃이나 친족에게까지 침탈하여 징수하는 일이 독처럼 팔도에 만연하고, 온갖 역(役)이 무겁고 번거로워 공사(公私) 간에 모두 힘들게 합니다.

더욱이 어떤 의논은 나라의 일과 백성의 일을 갈라서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상(慈詳)하고 화락한 사람에 대해서는 백성들을 기쁘게 하여 칭찬을 받으려 한다고 하고, 일이나 잘 처리하고 능력을 자랑하는 무리에 대해서는 마음을 다하여 공무를 집행한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숭상하는 기풍은 원근에서 영향을 받게 마련이니, 전하께서 비록 백성을 사랑하고 물건을 아끼는 마음이 있으나 사방의 백성들이 전하의 어짊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오늘부터 백성들과 더불어 새로 시작하십시오.

훈신에게 하사한 것은 감사(監司)가 그 실상을 조사하고 호조가 나누어 균등하게 분배하게 하여, 빼앗긴 것은 모두 돌려주고 많이 점유한 것은 나누어 줌으로써 균등하지 않고 잘못 침탈하는 우환이 없게 하십시오. 내수사에 투속한 자는 담당 관원에게 보내 법에 따라 재단하고, 이조에 신칙하여 관유(關由 관문(關文)을 보냄)하는 문이(文移 문서 시행)는 반드시 그 가부를 살펴서 쓸 것은 취하고 못 쓸 것은 버려서 조종의 옛 제도를 회복하십시오.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각 아문의 정책은 담당하는 사람에게 일체 폐지하도록 명하십시오. 여러 궁가에서 법을 어기는 경우 사헌부에서 적발하여 드러나는 대로 통렬히 다스리십시오.

전하께서 또한 스스로 크게 뉘우치고 깨달아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하여 덕을 우선으로 삼고 이(利)를 뒤로하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해 주십시오. 일 처리나 잘하는 신하를 지나치게 장려하지 말고 선량한 관리들을 지나치게 깎아내리지 말아서, 가혹한 정치는 억제하고 어질고 보살피는 도를 행하십시오.”

검약을 숭상하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왕자의 길례(吉禮)에 한껏 사치를 부려 진기한 보화를 중국에서 사사로이 사들였고 노리개로 쓸 도구나 제조 기술에도 상당히 마음을 썼습니다. 또한 대군(大君) 집을 지을 때도 조종조의 옛 규정을 넘었는데, 선조(先朝)의 왕자 중에는 지금도 집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이들에 대하여 먼저 조처해 주지 않으시고 대군을 위하여 먼저 집을 지으셨으니, 이것이야말로 ‘임금의 아우를 봉하지 않고 임금의 아들을 봉하였다’는 데 가깝지 않겠습니까.”

종실을 돈독히 하는 데 대해서는, 인성군(仁城君)의 자녀들을 시집, 장가보내 배우자를 찾아 줄 것이며, 광해(光海)의 거처를 넓히고 광해 때의 궁인을 보내어 나머지 인생을 즐겁게 살게 해 주기를 청하였다.

대궐 안을 바로잡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임금은 밖에 바르게 위치하고 후비(后妃)는 안에 바르게 위치하여 안의 말은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밖의 말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여, 안과 밖의 한계를 엄하게 하고 올바르지 못한 지름길을 막아야 합니다. 지금 궁중에 문안을 드리는 종들이 금문(禁門)을 출입하고 사사로이 술과 음식을 바치느라 대궐의 뜰에 뒤섞이는가 하면, 산천에 기도한다고 궁녀들이 공공연히 왕래하면서 잡다한 물품을 운반하느라 사복시(司僕寺)의 말이 도로에 지쳐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위로 자전(慈殿)을 받들면서 진실로 거스르지 않는 도리를 아시겠지만, 한결같이 법도대로 따르지 못한다는 것 또한 전하께서 어찌 모두 알고 계시겠습니까. 그리하여 밖에 소문이 전파되어 남모르게 탄식하는 사람이 많아 신들은 마치 부모의 허물을 듣는 것만 같으니 어찌 군부의 앞에 다 진달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주역(周易)》 〈가인괘(家人卦)〉의 ‘위엄으로 하면 길하다.[威如之吉]’라는 말을 체득하여, 자기 자신에게 돌려 정도를 가지고 궁궐을 맑고 엄숙하게 하십시오. 궁첩은 위엄으로 대하고 궁녀들에게는 장중하게 임하여, 총애를 열어서 모욕을 불러들이지 말며 은혜로 의(義)를 덮어 가리지 말고 사사로움으로 공도(公道)를 해치지 마시고, 좌도(左道 굿, 점 등의 술수)의 종류는 일절 금지하십시오.

왕실의 외척과 인척들도 신하이기는 매한가지인데, 어떻게 감히 사사로이 서로 문안하며 사사로이 물건을 진헌한단 말입니까. 만일 무식하여 이런 일을 저지르는 자가 있거든 담당 관원에게 맡겨 법으로 다스려 공명정대한 도리를 보이십시오.”

학문에 나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더욱 학문에 침잠하여 많이 축적하고 쉬지 않는 공부를 더하며 유신(儒臣)을 자주 접하여 강마한 보탬이 보존되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끝에 다시 희로(喜怒)의 지나침과 공사(公私)의 분별에 대해 간곡하게 경계하였다. 주상이 가상하게 받아들이고 각각 사복시의 말 1필을 하사하며, 말하기를 “옥당이 임금의 어질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장차 나라가 망할까 걱정하여 과인의 잘못과 민생의 병폐를 숨김없이 모두 진술하였으니, 내가 가상하게 여기며 감탄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공이 사양하자, 상이 말하기를 “옛사람은 소중한 말 한마디를 천금에 비유하였다. 그런데 지금 너희들의 약석(藥石)과 같은 말은 수백금에 비할 정도가 아니다. 옛날 당 태종(唐太宗)이 위징(魏徵)에게 은항아리[銀甕]를 하사하였을 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라고 하였다.

~ 서하 이민서 선조, “선고 영의정 부군 가장〔先考領議政府君家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