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은 삶으로 가는 길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열호)아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면 不亦樂乎(불역락호)아 人不知而不溫(인부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
“배우고 때때로 그 배운 것을 복습하고 익힌다면 즐겁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찾아오는 벗이 있다면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 <學而(학이)>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인데, 이 구절은 복 받은 삶으로 가는 길에 대해 서술한 말로 수시로 우리가 재음미해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열호)아!
공부하는 게 누구에게나 기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마 세상에 꾸준히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자가 이렇게 말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공부를 하는 것이 기쁜 게 아니라 공부를 통해 기쁨을 얻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고 생각된다. 공부하는 것이 늘 즐겁지는 않을 수 있지만, 공부를 하다가 무언가 깨닫고 얻는 바가 있을 때는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인격수련의 공부는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이어져야하는 데 여기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안다면 참으로 복 받은 인생이라고 하겠다.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면 不亦樂乎(불역락호)아!
공자의 주변에는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었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먼 곳에서 오는 벗’이 친구를 뜻하는 게 아니라 주로 제자 즉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사람, 같이 학습을 하려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학문에 능하여 먼 곳에서까지 그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진리의 찾아 배우고 실행하려는 길에 서로 돕고 격려해줄 수 있는 벗이나 제자는 찾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벗이나 제자를 찾았을 때는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맹자도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을 최고의 낙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비록 영재가 아니더라도 같이 진리를 탐구하려고 나서는 벗이나 제자가 있다는 것은 큰 도움이요 기쁨이 될 것이다.
人不知而不溫(인부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도덕 정치를 위해 군주들을 설득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던 때가 있었다. 아마 그때 공자조차도 본인을 알아주지 못함에 서운함을 느끼고
성찰과 공부의 시간을 가진 이후에 남긴 말일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열심히 무엇을 한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니 조롱하고 비웃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열심히 공부를 계속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다. 사실 영원을 관통하는 안목에서 보면 한 때 사람들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공부의 가치를 평가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남과의 비교도 별 가치가 없는 것으로 그저 참고할 만한 것에 불과하다. 뭇 사람들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은 안목의 부족으로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인간은 위대한 진리에는 자신들의 생존의 문제가 걸리게 됨으로 더욱 심각한 거부 반응을 보여 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러하다.
2021. 3.2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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