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성령의 임재

jookwanlee 2021. 2. 14. 03:04

성령의 임재

 

성령(聖靈)의 임재(臨齋)란 성령이 거룩함의 칼로 우리를 찔러 우리가 그 찔림 가운데 애통해 할 때 비로소 세상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위로가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칼을 받아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욕구들을 찌를 때, 하나님의 위로와 자유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진정한 위로는 성령으로부터 찔림과 상함과 더불어 임한다. 성령이 부어질 때, 그 거룩함의 임재 앞에 세상과 나의 욕구를 보며 변하지 않는 내 모습에 대해 좌절하고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갈등 가운데 십자가를 바라보고 걸어가려고 방향을 정하는 그 때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는 위로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가 성령의 검에 찔려 부수어 질 때,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부어진다. 따라서 성령의 검에 찔린다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사용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아(自我)가 깨어져야 온전히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 이용규, ‘내려놓음’ 중에서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통치하던 당시, 가장 보잘 것 없는 광야에 있던 미미한 존재였던 요한에게 성령이 임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왜 하필이면 요한에게 이었는가?

‘역사를 통해서나 인생을 살면서 교육수준이 비교적 낮지만 심오한 영적 깊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반면에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내면의 텅 빈 구멍을 감추기 위해 영리한 머리를 사용해서 그럴 듯하게 연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의 말이다. 이 말은 더욱 겸손하라고 하는 도전인데, 누구나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면 그에게 성령의 임재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입은 우리 선조님들은 이 성령의 임재를 ‘마음의 수양(修養)’이란 말로 달리 표현하였다고 생각된다.

 

1653년 백강 이경여 선생은 병자호란 후 재변(災變)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건의 사항들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이 ‘마음의 수양’을 말씀하였다.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로 하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君子莫大於正其心).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 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期必)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텅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이 이미 굳어져서 어느 것을 취하여도 본원(本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키고 버리는 사이에서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이미 없는 것이니, 어찌 외물(外物)에 대응 할 수 있겠습니까. ~~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임금의 한마음(一心)은 공격을 많이 받는다.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여 그 하나만이라도 받아들여지는 날이면 위망(危亡)이 따른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그 자성(資性)이 밝고 트여 이 마음이 희미한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극치(極致)라는 것도 결국은 이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 잠언 4장23절. 내가 내 마음을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올바르게 지킨다는 것은 바로 성령이 내게 임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2021. 2.14.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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