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공의가 죽고 언로가 막히면

jookwanlee 2021. 1. 26. 10:06
공의(公義)가 죽고 언로(言路)가 막히면 ~ 문형 서하공

1666년 현종 7년, 당시 대신(臺臣)들이 한창 경상도 관찰사 민점(閔點)이 사사로움을 따른 잘못에 대해 논했는데, 우의정 허적(許積)이 연석에서 대신들의 논핵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극히 아뢰며, 여러 신하들을 준절하게 배척하였다.

이 때 응교(應敎) 서하 이민서 선생은 차자 가운데 언로에 관해 논한 내용에,

“지금 전하께서는 그 말의 옳고 그름을 살피지 않고 오직 관직의 높고 낮음만으로 번번이 취사선택을 보이셔서, 재상(宰相)은 국론(國論)을 맡고도 공의(公議)를 살피지 않으며, 대각(臺閣)은 언책(言責)을 맡고도 감히 말을 다하지 못하니, 경중의 형세가 서로 유지할 수 없고, 가부(可否)하여 바로잡아 주는 도리가 서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설령 훗날 크게 간특한 자가 위복(威福)을 멋대로 쓰는데 한 사람도 감히 말을 하는 자가 없다면, 국가가 위태로워져 망하는 것을 장차 어떻게 구제할지 모르겠습니다. 근래에 대신(大臣)이 대계(臺啓)가 사실과 다르다고 진달하면서, 심지어 대신(臺臣)들을 한꺼번에 배척하여 공공연히 제멋대로 욕하고 꾸짖으며, ‘대각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릇 국가가 대간(臺諫)을 설치한 것은 임금의 귀와 눈 역할을 맡긴 것이니, 그 사람이 합당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내치고, 그 일이 옳지 않으면 그 일을 힐책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한때의 일로 대각을 믿을 수 없다고 지적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는 성상께 경시하는 조짐을 열어 주어 대각의 끝없는 수치가 되도록 한 것이니, 대신(大臣)이 임금을 섬기는 체모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는데,

임금이 ‘대신(大臣)을 공격했다’고 하며 엄중한 비답을 내리자, 공이 즉시 상소를 올려 사직하여 체차되었다.

~ 서하집, 서하 이민서 선생 가장(家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