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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猜忌心)에 대해

jookwanlee 2020. 6. 5. 02:40

시기심(猜忌心)에 대해

 

요나는 하나님께 말하기를 제가 고국에 있을 적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아니 하였나이까하고 말하며 이방인에 대한 시기의 마음을 들어냈는데(요나 42) 하나님은 시기하고 말을 안 듣는 요나를 물고기 배속에 집어넣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하고 요한을 지칭하여 시기하는 마음으로 물었다(요한복음 2121). 그 때 예수께서 베드로의 시기심을 간파하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요한)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1313절의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고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라고 경계하였다. 마르틴 루터에게 감화를 준 타울러(Tauler)시기의 말을 하느니 내 혀를 깨물겠다라고 하였다 (칼빈대 김의환 총장).

 

시기심을 극복하는 첩경은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데 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첫째로 각 사람은 누구와도 같지 않게 독특하게 창조된 존재라는 것이며, 둘째로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면 그 결과는 교만해지거나 아니면 시기심을 갖게 되는 것 중 하나인데, 교만이나 시기나 모두가 죄악이기 때문이다.

 

시기심은 남의 사정을 깊이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남모르는 상처나 숨은 고통 등이 있게 마련이다. 남을 가까이서 깊이 알게 되면 시기하지 아니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시기하면 사람들과 멀어지고 동료애를 가지면 서로를 알도록 노력하게 되고 서로 화합하여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만든다. 로마서 1215절에는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라고 권면하고 있다. 즐거워 할 일이 있는 자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즐거워할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하나님은 필요하면 모든 자들을 다 즐거워하게 하실 수가 있다. 남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나의 즐거운 일을 즐거워하면 즐거워함이 많아져 영과 육이 다 강건해지고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된다.

 

내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에 감사함을 배울 때에 우리는 남들에 대한 시기심을 극복할 수가 있다. 백지에 내가 이미 받은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보면 감사할 일이 많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은 각자의 선택으로 이를 배우는 인격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남들보다 많이 가졌다고 반드시 행복해지지 않으며 오히려 불행하게 될 수도 있다.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진리를 배우고 사랑해 가도록 해야 한다. 공자(孔子)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도 마음에 즐거움이 있다고 하였다. 즉 공자는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를 다함으로써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그 마음에 즐거움이 있었던 것이다.

 

인생이 불공평해보일 때에는 하나님은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분임을 기억하고 그를 믿자.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내게 꼭 필요한 것으로 채워 주신다. 흔히들 재물을 많이 달라고 하지만 필요 이상의 재물은 오히려 고통과 재앙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사치하고 방탕하고 교만하여지기 십상으로 결국은 해롭게 될 수 있다. 지금은 받지 못한 재물이나 지위나 재능 등으로 인해 항상 깨어있고 최선을 다해 바르게 살아갈 때에 그 인생의 마지막은 훌륭해지게 된다.

 

당신이 마음으로 시기심을 가진다면 이미 당신은 하나님과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하나님이 당신의 생애에서 선()하신 분임을 의심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남을 축복한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주지 않으실 때는 이유가 있다. 그는 당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당신을 향한 목적이 있으시니 이를 위해 기도하라. 그리하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으리라. 하나님을 의심하기 때문에 열병과 같은 시기심을 일어나는 것이며, 이에 대한 처방은 당신의 생각을 뛰어넘어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다. 시기심의 극복은 이런 훈련의 과정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에베소 교회가 자칭 사도라는 거짓 이단들을 축출한 것에 대해 칭찬하셨다. 그러나 이어서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시록 24)라고 책망하시고 만약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며 무서운 경고를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실천에 대한 처음의 사랑을 버려서는 안 된다. 이웃과 그들이 가진 것들은 사랑의 대상이며 시기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이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도록 힘쓰는 노력은 우리가 시기하여 벤치마킹하는 것이 필요하다.

 

율곡 이이 선생의 삶의 목적을 성인(聖人)이 되는 것에 두고 죽을 때 까지 정진하셨던 것은 좋은 귀감이 된다. 또 백강 이경여 선생이 후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치(奢侈)함과 호화로운 것은 여러 가지 악()함의 근본이요, 모든 값진 장식품도 역시 좋은 뜻을 손상(損傷)시키며, 백가지 구경을 좋아하는 함 역시 뜻을 상하게 하는 것이요, 음란(淫亂)한 음악과 아름다운 여색(女色)은 가장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 되는 것이니 굳게 방비(防備)하여 범하지 말라. ()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 것이며 ~ 날마다 하는 공부를 감히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 역시 옳지 못한 것들을 탐내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로지 성인(聖人)을 되려고 공부하는 바를 탐내고 시기하라는 말로 해석되어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것이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대변되는 세상의 것들에 대한 시기는 결국 해로울 뿐이니 버리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나, 다만 진리이신 하나님을 앙망하고 인격의 성숙을 도모하는 일에 대한 시기는 오히려 우리가 더욱 갖고 정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0. 6. 5.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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