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淸州) 고(故) 학생(學生) 이도명(李道命)
충공(忠功)에 대하여 포양(褒揚 칭찬하여 장려함)
충청감영계록(忠淸監營啓錄)○철종(哲宗) / 철종(哲宗) 3년(1852) 9월 초8일
상고(相考)한 일을 아룁니다. 이번에 도부(到付)한 예조(禮曹)의 관문(關文)에, “이번에 계하(啓下)한 것임. 도내(道內) 유학(幼學) 김흥연(金興淵) 등이 어가(御駕) 앞에서 상언(上言)한 것에 의거하여 올린 예조의 계목(啓目)에, ‘계하 문건은 점련(粘連)하였습니다. 지난번에 충청도 유학 김흥연 등이 한내(限內)에 현신(現身)하여 호구(戶口)를 현납(現納)하였으니 친정(親呈)이 확실〔的實〕합니다. 이 상언을 보면, 청주(淸州) 고(故) 학생(學生) 이도명(李道命)의 무신년(1728, 영조4) 충공(忠功)에 대하여 포양(褒揚 칭찬하여 장려함)의 은전(恩典)을 내려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도명이 창의(倡義)에 힘쓴 노고가 과연 상언에서 말한 내용과 같다면, 진실로 포장(褒奬)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은전은 일의 체모가 막중하여 삼가고 조심해야 하니, 해당 도(道)의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상세히 실제 행적을 조사하고 여론을 널리 채집하여 계문(啓聞)한 뒤에 다시 품처(稟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함풍(咸豐) 2년 8월 11일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한계원(韓啓源)이 담당하였는데, 그대로 윤허한다고 계하하였다. 계하의 사의(辭意)를 잘 받들어 살펴서 시행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위 이도명이 창의한 실제의 행적과 여론을 널리 채집하고 장첩(狀牒)을 참고하니, 실제로 힘쓴 노고에 대한 행적이 있어, 과연 포양의 은전에 합당합니다. 그러므로 원래의 내용을 간추려서 개록(開錄)하여 치계하오니, 해당 조(曹)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하소서.
고 학생 이도명은 곧 문정공(文貞公) 이경여(李敬輿)의 재종손(再從孫)입니다. 어질고 효성스럽고 맑고 충성스러워, 가훈(家訓)을 대대로 이어받았습니다. 태어난 지 겨우 두 살에 엄부(嚴父)를 여의고 다른 사람이 아비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곧 눈물을 흘렸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섬김에 사랑과 공경을 다하여 병이 나셨을 때는 상분(嘗糞)하거나 별에게 빌며 최선을 다하였고, 마침내 속광(屬纊)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나흘을 더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종제(終制 탈상)하는 3년 동안 매일같이 슬퍼하였는데, 이런 것들은 이 사람에게 오히려 소절(疎節 간략한 예절)이었습니다.
무신년에 적당(賊黨)이 성을 함락하여 사민(士民)들이 놀라 달아났지만, 거룩하게도 이 사람은 앞장서서 홀로 나가 대중에게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자고 고하고 의려(義旅 의병(義兵))를 불러 모아 곧바로 청주성으로 들어가 먼저 늘어선 적들을 베었습니다. 또 박민웅(朴敏雄)과 병사를 합하여 박산성(薄山城)으로 나아가 20여 적을 토주(討誅)하고 거괴(巨魁)의 목을 베었으며 남은 무리를 모두 평정하고 군사를 거두어 물러나 돌아왔습니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서 사람들은 어제의 의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혹여 적을 토벌한 공로를 말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때마다 나라의 복록〔國祚〕과 성상의 덕〔聖德〕에 공을 돌리고 자신에게 공이 있다고 자처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을 일러 ‘하늘에게 공을 돌리고 자신에게 공이 있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를 만합니다. 그 양이(攘夷)한 공로와 창의한 행적은 이미 《상당창의록(上黨倡義錄)》에 자세하고, 또한 본읍(本邑) 읍지(邑誌)에도 실려 있습니다. 한 고을의 노소(老少)가 숙강(熟講 자세히 강론함)하는 것에 그칠 뿐만 아니라, 또한 전성(全省)의 사림(士林)이 추앙하고 있습니다. 읍보(邑報)에서 사실을 채록하였으니, 더욱 증험할 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주-D001] 상분(嘗糞) : 부모의 위중한 병세(病勢)를 살피기 위하여 그 대변을 맛봄을 이르는 말로, 지극한 효행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임.
[주-D002] 속광(屬纊) : 임종(臨終) 때의 한 절차임. 광(纊)은 햇솜으로, 이것을 입과 코에 대어 숨이 끊어졌는지의 여부를 알아보았음.
[주-D003] 상당창의록(上黨倡義錄) : 박지후(朴之垕)와 박창한(朴昌漢)이 편찬하여 영조 49년(1773)에 발간한 책으로, 영조 4년(1728) 청주〔上黨〕에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청주 지역의 사족들이 의병을 일으킨 사적을 엮었음.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심영환 (역)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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