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수행(修行)과 사가독서(賜暇讀書)
“예수는 물러가시어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누가복음 5장 16절). 레바논의 사상가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이 “가장 외로운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고 하였다.
현대인들의 심리적인 특성 중의 하나가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점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혼자 있게 되면 자신을 감당치 못하여 안절부절못하며 TV를 켜거나 컴퓨터 앞에 앉거나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곤 한다. 모두가 바쁘고 산만하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그러기에 자신의 참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신세계는 고독한 자리에 혼자 있을 때에 깊어지고 성숙되어진다. 홀로 있는 고독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다. 바쁘기만 하고 산만하기만 하여서는 절대로 정신적인 진보를 이루어 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영혼들은 한 결 같이 광야에서, 사막에서 혹은 산중에서 홀로 있으며 자신의 영혼을 갈고 닦은 사람들이다. 히말라야 산 중에서의 석가모니의 7년간에 걸친 고독한 수행이나 마호메트의 사막 동굴에서의 수행 같은 경우가 두드러진 예이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홀로 40일간을 금식하였고 틈만 나면 홀로 산으로 가시거나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시거나 생각하셨다. 모세는 호렙산 기슭 인적이 드믄 곳에서 무려 40년에 걸쳐 고독한 세월을 보냈다. 엘리야도 호랩산 굴 속에서 자신의 혼을 갈고 닦았고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 깊숙이 들어가 3년을 지나며 자신의 영혼을 순화시켰다. [ 2009.11. 2. 김 진 홍 목사 ]
유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세종대왕께서는 유능한 인재들에게 아래와 같이 사가독서(賜暇讀書)제를 실시하여 홀로 깊은 공부와 사색을 하는 기회를 주시었다.
성종 때의 학자 조위(曺偉 1454~1503)가 쓴 독서당기(讀書堂記)에는 성종 때 독서당을 설치한 유래와 그 취지가 잘 밝혀져 있다.
독서당의 연원은 세종대의 사가독서(賜暇讀書)에서 시작한다. 세종은 1426년(세종 8) 12월, 젊은 문신 중에 재주가 뛰어난 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가독서제를 실시하였다.
아래는 조위의 독서당기중 세종대왕께서 “사가독서제”를 여시는 연원에 대한 설명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본조(本朝)에 열성(列聖)이 서로 계승하고 문치(文治)가 날로 높아, 세종대왕께서 신사(神思)ㆍ예지(睿智)가 백왕(百王)에 탁월하여 그 제작의 묘함이 신명(神明)과 부합되어 “전장(典章)과 문물은 유학자가 아니면 함께 제정할 수 없다.” 하시고는, 널리 문장(文章)의 선비를 뽑아서 집현전을 두고 조석으로 치도(治道)를 강하고, 또 “의리(義理)의 오묘함을 연구하고, 뭇 글의 호양(浩穰)함을 널리 종합하려면 전문의 업이 아니면 능히 할 수 없으리라.” 하셨다. 비로소 집현전 문신 권채(權採) 등 세 명을 보내되, 특히 긴 휴가를 주어 산 절에서 글을 편히 읽게 하였고, 그 말년에는 또 신숙주(申叔舟) 등 6명을 보내어, 마음껏 즐기며 실컷 그 힘을 펴게 하셨다.[恭惟 本朝列聖相承 文治日臻 世宗大王神思睿智 卓越百王 制作之妙 動合神明 以爲典章文物 非儒者 莫可共定 博選文章之士置集賢殿 朝夕講劘治道 又以爲硏窮義理之奧妙 博綜群書之浩穰 非專業莫克 始遣集賢文臣 權採等三人 特賜長暇於山寺 任便讀書 季年又遣申叔舟等六人 便得優游厭飫 大肆其力]」* 출전 : 조위(曺偉), 독서당기(讀書堂記), 『속동문선(續東文選)』 권14
효종대왕이 유독 大人先生이라고 늘 칭할 정도로 훌륭하셨던 백강 이경여 선생도 사가독서제의 혜택을 누린 대목이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으시고 서포 김만중 선생이 쓰신 백강상공 신도비에 언급되어 있다. 백강상공의 훌륭하신 인생여정이 사가독서 등을 통하여 기른 높은 인품에 크게 연유한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목사로 알려진 미국의 Rick Warren 목사는 우리들에게 휴식과 여유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휴식과 여유로움을 누림은 재충전과 창의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너무 바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큰 사명인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방해하는 제일의 저해요인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인 신학자 A.W. Tozer는 사실상 모든 인간의 결국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적시하며, 스스로 고독하다는 것으로 비관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간에서도 다 각각 그 영적인 체험이 달라 그 영혼은 각자 고독할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독과 홀로 있는 시간의 의미를 바로 알고 잘 활용하여 인격을 연마하여 나가서 참으로 바람직한 인생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2018.10.24.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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