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향기
가을이 되면 은은하고 깊은 국화(菊花)의 향기(香氣)를 맡아 볼 수가 있는 것은 또 하나의 놓칠 수 없는 행복이다. 요즈음은 국화꽃잎을 말려 만든 국화차를 아내가 집에 사다놓아 때때로 같이 즐길 수가 있으니 더욱 좋다.
국화향기를 생각하니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란 시와 능호관 이인상 선생의 작품 “병든국화”의 가냘프고 애처로우나 꿋꿋한 모습이 떠오른다.
< 국화 옆에서 >
서 정 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고, 천둥도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으며, 간밤에는 무서리가 저리 내리었다.
이런 인고(忍苦)의 긴 세월을 격은 연후에 핀 국화꽃은 이제는 젊은 날의 방황 길을 돌고 돌아 이제는 성숙한 모습이 되어 있는 사십이 넘은 나의 누님의 모습과 같구나!
우리 인생길에 만나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깊고 오랜 인고의 세월과 누군가의 노력 속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되니, 일상(日常)이 더욱 감사하고 행복해 질 수가 있겠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행복에 지름길이요, 나아가 큰일도 잘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국화와 그 그윽한 향기가 너무 좋아 가을이 되어 공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국화 앞에서 그 향기를 맞아보느라 정신을 팔기도 한다.
조선 문인화의 대표작가 능호관 이인상 선생의 작품 중 선생의 말년에 그린“병든 국화”란 작품이 있다.
이인상 선생이 비록 말라 비틀어졌어도 깊숙한 지조(志操)의 향기를 풍기는 국화를 무척 사랑하며, 화폭에 담은 마음을 나이가 들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이인상 선생 스스로가 지조 있는 선비였으며, 오로지 그 기품(氣稟)을 그림으로 표현한 분으로, 세속적인 작품은 남기지 않으셨다.
나의 인생길도 병든 국화처럼 비록 몸은 점점 쇠락하여 갈지라도 깊은 정신의 향기를 품어 내는 인생이 되어가기를 다짐해본다.
국화꽃은 매화(梅花)와 더불어 우리 인생길을 살아감에 깊은 가르침을 일깨워주는 꽃이다. 꽃 중에 참으로 귀한 꽃이라고 하겠다.
2012.11. 9. 이 주 관
* 첨부 : “병든 국화” ~ 이인상 선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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