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마음의 즐거움

jookwanlee 2024. 2. 5. 00:16

마음의 즐거움

 

“원(元) 나라 때 허형(許衡)이 이르기를 “천지간의 인물에는 저마다 분한(分限)이 있으니 분한 밖에 지나치게 바라서는 안 된다. 마구 써서 없애는 것이 많고 보면 하늘에 죄를 얻는다.”하였는데, 이는 대개 사치를 다하고 탐욕을 다하는 것은 실로 복(福)을 꾀하는 방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1653년 효종4년 7월2일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上箚文)>.

 

주어진 제 분수(分數)를 알고 마땅히 그쳐야 할 데에서 그쳐야 하늘의 화(禍)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는 안분낙도(安分樂道)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이 내게 주신 분수를 알고 사람이 행할 도리(道理)를 행해갈 때에 비로소 마음의 즐거움이 찾아든다. “군자는 중용에 의지하여 세상에서 숨어 있어 알려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으니 이는 오직 성자(聖者)라야 그렇게 할 수 있다[君子 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군자 의호중용 돈세불견지이불회 유성자능지).] <중용(中庸) 1편 11장>.

 

성경의 사무엘 선지자는 이런 하늘의 이치를 체득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였다.

 

사무엘의 평생에 걸친 청빈하고 투명한 삶을 살았다. 사무엘상 12장의 첫머리에서 당시의 왕과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무엘은 다음같이 말했다. “내가 누구의 나귀를 빼앗은 일이 있느냐? 내가 누구를 속인 일이 있느냐? 누구를 억압한 일이 있느냐? 내가 누구에게서 뇌물을 받고 눈 감아 준 일이 있느냐?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고발하라. 내가 너희에게 갚겠다.” 사무엘의 이런 말에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하기를 당신은 그런 일이 전혀 없었노라고 한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두 명의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한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권력과 이권에 초연한 채로 깨끗한 일평생을 살았다.

 

사무엘은 자신은 왕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나 성직자로서의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두 번에 걸쳐 왕을 세웠다.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는 요청에 처음에는 청년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사울이 왕이 된 후에는 기대를 저버리고 바른 통치를 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를 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펼쳐 나가는 통치를 하지 않았다. 몇 번에 걸친 사무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은 그릇된 지도자의 길을 돌이키지 않았다. 이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사울이 아직 왕위에 있음에도 청년 다윗을 다음 왕으로 발탁하여 이끌어 주었다. 사무엘은 다윗과 자신의 고향 ‘라마’에 세운 공동체 ‘라마 나욧’에서 함께 거하며 차세대 왕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정신과 자질을 길러 주었다. 사무엘이 다윗의 멘토(Mentor)가 된 것이다.

 

사무엘은 평생토록 권력이나 이권에 매이지 아니하고 청빈하고도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나이 들어서는 고향 라마로 낙향하였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사무엘상 7장 15,17절). 그런데 다른 노인들과는 달리 그때부터 사무엘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였다. 다른 노인들 같으면 손자들 재롱이나 즐기고 낚시질이나 바둑 같은 일로 소일하였을 때임에도 그는 달랐다. 뜻 있는 젊은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히브리말로 공동체를 뜻하는 말이 ‘나욧’이고 사무엘이 노후에 세운 공동체의 장소가 ‘라마’이기에 라마에 세워진 공동체라 하여 ‘라마 나욧’이라 부른다.

 

사무엘은 젊은이들과 함께 낮에는 밭을 일궈 농사를 짓고 밤에는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고 온 겨레가 나아갈 길을 함께 찾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가 세운 이 ‘라마 나욧’에 청년 다윗이 찾아 왔다. 사울 왕의 견제를 받아 이리저리 쫓기다가 결국은 사무엘의 ‘라마 나욧’으로 숨어들었던 것이다.“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거하였더라”(사무엘상 19장 18절). 이곳 ‘라마 나욧’에서 사무엘이 위대한 왕 다윗을 배출하였다.

 

우리도 사무엘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자.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영혼의 즐거움을 누리는 길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즐거움을 누리자. 이는 주변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인간적인 행복감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감, 늘 즐거운 마음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이다.

“군자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짐을 즐기고 소인은 눈앞에 일이 이루어짐을 즐긴다[君子樂得其志 小人樂得其事]”<강태공(姜太公)>. 대개 사람에게 욕심이 있으면 그 마음이 분주하여 근심이 많고, 욕심이 없으면 천리(天理)가 저절로 밝아져서 가는 곳마다 편안함을 느껴 즐거운 것이다. “가슴속의 즐거움을 미루어서 사물에 미치면 천지 만물이 모두 나와 일체이니, 어느 한 가지도 나의 즐거움 가운데에 있지 않는 것이 없다[自其胷中之樂 推而至於及物, 則天地萬物 猶吾一體 無一不在吾樂之中(자기흉중지락 추이지어급물, 즉천지만물 유오일체 무일부재오락지중)].” <권근(權近), ‘독락당기(獨樂堂記)’>.

 

백강 이경여 선생이 평소 즐기는 모습을 우암 송시열 선생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공은 매양 공무(公務)를 마친 여가에는 흥취(興趣)를 가져서 속세(俗世)를 벗어나는 고상(高尙)한 생각이 있었다. ··· 공은 천품(天稟)이 청수하고 아름다우며 힘써 배워서 학문하는 요점을 알았다. 공이 일찍이 이르기를, ‘이 마음은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 비가 갠 뒤의 깨끗한 바람과 달)과 같은 것이니, 야기(夜氣 밤의 깨끗하고 조용한 마음)에서 더욱 알 수 있다.’ 하였다. 그러므로 독서(讀書)로써 물을 대듯하여 그 인격의 뿌리를 북돋았다. ··· 공은 항상 마음이 즐겁고 평온하여 간격이 없었고 또 일찍이 세속에 유동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나의 마음이 즐거우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고 즐거움의 대상으로 보인다. “마음이 즐거운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잔칫날이다.”(잠언 15장 15절).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 마음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2024. 2. 5.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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