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형제우애(兄弟友愛)

jookwanlee 2023. 4. 16. 06:15

형제우애(兄弟友愛)

 

오늘날 이 시대는 물질문화의 팽배, 인륜도덕의 타락 등으로 인정은 메마르고 개인주의가극심화 되어 형제간의 우애조차도 믿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서로 송사(訟事) 조차도 거리끼지를 아니하는데, 이는 맹자가 사람의 본성으로 언급한 "측은지심(惻隱之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것이다.

 

‘논어’의 ‘자로(子路)편’에 “군자(君者)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이 나온다. 화이부동이란 말에 담겨진 의미는 남들과 사이좋게 지내되 무턱대고 사이좋게만 지나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간의 다름과 차이점을 분명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바탕 위에서 조화를 이루어 화합을 이루어 나가자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지세(地形地勢)가 산이 많고 땅이 척박하여서 그런지 우리는 서로 다른 점들을 들추어 갈등을 빚고 다툼을 일삼는 일에 몰두하여 많은 세월을 지내왔는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자면 우선 가장 가까운 형제로부터 우애가 있도록 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성경에도 이르기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장 23,24절)고 하였다.

 

동몽선습(‘童蒙先習)’에서는 말하기를 “하물며, 형제는 동기(同氣)의 사람이고, 뼈와 살을 같이한 지극히 가까운 친족이니 더욱 마땅히 우애(友愛)하여야 하고, 노여움을 마음에 품고 원망하여서 하늘의 바른 뜻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而況兄弟 同氣之人 骨肉至親. 尤當友愛 不可藏怒宿怨 以敗天常也. (이황형제 동기지인 골육지친. 우당우애 불가장노숙원 이패천상야)”라고 하였다.

 

우리 역사에 현종2년(1661년) 7월1일 암행어사 죽서 이민적 선생의 요청으로 호서사람 윤삼을 영릉참봉으로 삼았는데 그 연유는 아래와 같다.

 

“윤삼은 호서사람이다. 병자호란 때 온가족이 포로가 되어 끌려갔는데, 후에 돈을 마련하여 속을 바치고 돌아올 무렵에 윤삼이 그 노복에게 말하기를 '내 자식이야 지금 속바치지 못하더라도 내가 죽지만 않는다면 후일에 내가 속을 바치고 귀환시킬 수가 있다. 그러나 내 조카의 경우는 이미 부모가 없으니 지금 속을 바치지 아니하면 돌아올 기약이 없을 것이다. 모두 속을 바칠 수가 있게 되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돈이 부족하거든 조카를 우선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의 노복이 윤삼의 말대로 하여 조카에 대한 속을 바치고 조카를 고국으로 귀환시키었는데, 그 다음해에 다시 가보니 그의 아들은 이미 죽고 말았다. 윤삼은 아들이 없게 되자 그 조카를 아들로 삼았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등백도의 고사'에 견주어 말하곤 하였다. 죽서 이민적 선생은 암행어사로 나가 염찰한 뒤에 그를 수용할 것을 계청한 뒤에 윤삼이 관직에 보임된 것이다.” [‘현종실록’에서]

 

우리는 모쪼록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큰 두 계명 중 하나로 언급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가슴팍에 새기고 동기지인(同氣之人)이며 골육지친(骨肉至親)인 형제자매로 부터 각별히 생각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인데 이것이 천도(天道)를 지키는 것이니 그리하는 것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며 내세(來世)에 축복을 받는 길이기도하다. 다만 “위여지길(威如之吉, 예의를 지켜 대하면 나중이 화평하고 복되다)”이란 ‘주역(周易)’의 교훈과 같이 품위와 예법을 지키며 대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데 긴요한 것이다.

 

* 주(註) : [위여지길(威如之吉)]은 ‘위엄으로 하면 길하다. 예의를 지켜 대하면 나중이 화평하고 복되다’는 의미이다. ‘주역(周易) 가인괘(家人卦)’에 이르기를 “위엄으로 하면 길하다(威如之吉)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돌려 구하기를 올바름으로 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2023. 4.16.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