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인격의 성숙

jookwanlee 2022. 9. 6. 20:29

인격의 성숙

오스카 와일드가 쓴 ‘그 날 이후’란 글이 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자신이 땅에 계시던 때에 기적을 베푸신 사람들이 그 후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하여 찾아오셨다. 예수께서 한 주정꾼을 만나셨다.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손발을 떨고 있는 처지였다. 예수께서 그의 어께에 손을 얹으며 “형제여 어찌 이 꼴이 되었소?”하고 물었다. 그가 말하기를 “내 절름발이 다리를 고쳐 준 예수시군요.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는 구걸을 하며 살아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살았는데 건강한 두 발이 된 후로는 얻어먹을 수도 없고 마음에 맞는 일자리는 없고 하여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이처럼 되었습니다.”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갈릴리로 가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움질을 하고 있는 한 불량배를 만났다. “여보 젊은이 한낮에 이게 뭔 짓이요?”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가 예수를 알아보고 말하였다. “소경이었던 나를 고치신 예수시군요. 앞을 보지 못하던 내 눈에 진흙을 발라 눈이 뜨이게 해 주셨을 때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온 세상이 나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나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소경으로 있을 걸 하고 후회도 하였습니다. 화풀이하며 살다 보니 결국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하고 흐느껴 울었다.

이 이야기에 담겨진 교훈은 “은혜를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가꾸어 나가는 겸손과 노력이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어 준다. 그러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고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들의 인격의 도야와 그 성숙의 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특히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배우는 삶을 살아간다면 위의 오스카 와일드가 들은 예의 불행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깊은 사랑을 알고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배워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데 초점을 두고 나간다면, 우리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있을 것이며 더 큰 은혜와 축복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조정에서 “마음의 수양과 인격의 성숙”을 가장 강조하여 말씀하였는데, 특히 이를 위해서 홀로 있을 때도 삼가서 마음이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데,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까지도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정진(精進)하여 나아 갈 것을 강조하였다 <효종 4년(1653) 7월2일 상차문(上箚文) 중에서>. 또한 야고보서 1장 4절에서는 “그러므로 끝까지 참고 견디어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고 성숙한 인격의 사람이 되십시오.” 라고 하며 우리에게 인격의 성숙을 도모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아울러 흑인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부르짖었던 것은 인종차별이 없는 만인평등 외에 또 다른 하나가 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세속적인 가치가 아닌 각자의 노력으로 다듬은 인격의 성숙으로 평가 받고 대우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인생의 참된 가치는 인격의 성숙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바람직한 삶의 목표는 인격의 성숙을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율곡 이이 선생과 백강 이경여 선생의 삶의 목표는 성인(聖人) 또는 군자가 되는 데에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인격의 성숙을 삶의 목표로 삼은 것이며 그들의 행적은 인격의 성숙으로 대우 받는 세상을 이루어가는 것을 지향하였던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예수님을 닮은 온유와 겸손 그리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로 다듬어진 인격이(갈라디아서 5:22-23) 내세에서 천국에 들어가 높이 인정받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대우 받는 기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매우 소중하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세속적인 욕심과 죄성(罪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이루어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할 것이며 자칫 진리가 아닌 내가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로 헤르만 헤세는 “기도”라는 시에서 나를 죽이고 하나님만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마음의 각오를 깊게 깊게 다졌는데 이는 참으로 우리들의 삶의 귀감이 된다.

기도(祈禱, Gebet)
·········································· Hermann Hesse

신이여, 나로 하여금 내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당신에게만은 절망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비탄을 맛보게 하여 주시고
고뇌의 불이 나를 휩싸게 하여 주옵소서.

나로 하여금 온갖 모욕을 겪게 하여 주시고
스스로 견뎌 나감을 돕지 마옵소서.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옵소서.
그러나 나의 모든 고집이 꺽기어 지거든
그렇게 만드신 분이 당신이었음을 보여 주소서.

당신이 그 불꽃과 고뇌를 낳으셨음을 알게 하소서.
왜냐하면 나는 즐거이 멸망하고 즐거이 죽겠사오나
다만 당신의 품안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2. 9. 7. 素淡

그림: 강상초루도,  능호관 이인상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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