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자비를 베푸는 마음

jookwanlee 2022. 3. 14. 01:13

자비(慈悲)를 베푸는 마음

 

카네기(Dale Carnegie)는 “당신이 내일 만날 사람들 중 4분의 3은 동정심(同情心)을 갈망할 것이다. 그것을 그들에게 안겨 주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5장7절에서는 “자비(慈悲)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긍휼(矜恤)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다.

 

불가(佛家)에서 강조하는 사무량심(四無量心)에는 이 자비(慈悲)의 마음이 들어가 있으니 탐욕을 버리고 사랑을 베푸는 자애로운 마음(慈)과 부드러운 눈길로 가엽게 여기는 마음(悲)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또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만족을 주는 것은 큰 자애(大慈)이고, 많은 사람들의 불행과 불만을 없애주는 것은 큰 가엾음(大悲)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애로운 마음(慈)을 닦으면 탐욕심(貪慾心)이 저절로 끊어지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悲)을 닦으면 성내는 마음이 저절로 끊어진다. 이렇게 탐욕과 성냄을 끊어 버린다면 그의 인생길은 평탄하고 아름다워진다. 역경(易經)에 ‘징분질욕(懲忿窒欲)’이란 말이 있으니 성냄을 징계하고 욕심을 억제하라는 말인데, 성냄과 욕심은 잘못을 저지르고 낭패(狼狽)를 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인간의 속성이 악(惡)한 마음은 좀처럼 버리기 어려우니 기르던 개를 버리기 쉽지 않은 것과 같고, 자비로운 마음은 쉽게 잃어버리니 숲속을 달리는 사슴을 놓치는 것과 같다. 악한 마음은 바위에 새긴 글자와 같이 지우기 어렵고, 자비로운 마음은 물 위에 그린 글자와 같이 쉽게 지워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비의 마음을 기르도록 부단히 마음을 닦는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장23절).

 

이렇게 내 마음을 지키는 일에 대해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4년 (1653년) 7월 2일 상차문(上箚文)에서 말하기를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體)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證驗)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2022. 3.14.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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