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을 맑게 하여 기강을 확립해야 나라가 산다 ~ 율곡 이이 선생
임신년(1572년, 선조5년) 10월에 율곡 이이 선생이 경연에서 아뢰기를,
“임금이 드높은 지위에 앉아 스스로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면 좋은 말이 어디로부터 들어오겠습니까. 반드시 다방면으로 널리 들어서 그중 좋은 것을 가려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신하들이 모두 나의 스승이 되고 여러 가지 좋은 것이 임금의 몸에 모여들어 덕망과 업적이 이로써 높아지고 넓어질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겸허한 마음과 사양하는 모습이 하교(下敎)에 나타나오나, 공론을 따르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을 옳다 하시고 남의 말이 틀렸다고 하는 데 있어서는 도리어 남이 나만 못하다고 여기는 병폐를 가지고 계시니, 신은 삼가 민망스럽게 생각합니다. 삼정승이 아무리 아뢰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성상의 뜻을 거슬러 도리어 임금의 덕에 누가 될까 두려워하는 까닭에 묵묵히 입을 다물고 세월만 보내는 실정입니다. 만일 성상의 뜻이 선치를 해 보려는 데 있다면 대신 또한 반드시 속에 있는 말을 다하고 조정의 신하들도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각각 아뢸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일은 참으로 하기 어렵다. 한 가지 폐단을 고치려 하면 또 한 가지 폐단이 생겨나 그 폐단을 고치기도 전에 도리어 해만 더하게 된다.” 하니, 선생이 아뢰기를, “기강이 서지 않아 인심이 해이하고 관직에 적임자를 가리지 않은 채 구차하게 충당한 사람이 많으므로 녹 먹는 것만 알 뿐 나랏일은 생각하지 않기에, 폐단을 고치라는 명령이 한 번 내려지면 귀찮아서 꺼리는 생각부터 먼저 가져 임금의 명을 받들어 행하지도 않을뿐더러 고의로 폐단을 만들어 내기까지 합니다. 이 때문에 공적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하였다.
얼마 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승진하여 경연에 입시하였다가 아뢰기를,
“오늘날 나라에는 기강이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지금 그대로 인순(因循)한다면 다시는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전하께서 큰 뜻을 분발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시고, 이를 계기로 대신과 백관들을 엄하게 경계하여 일시에 진작시켜 기강을 세워야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강은 법령이나 형벌로써 억지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조정에서 착한 사람을 좋아하고 악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공정히 하여 사사로운 정이 통할 수 없어야만 기강이 서는 것인데, 지금 조정에서는 공(公)이 사(私)를 이기지 못하고 정도(正道)가 사도(邪道)를 이기지 못하니, 어떻게 기강이 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소견은 예로부터 똑같지 않아서 세상일에 어두운 선비는 ‘요순(堯舜)의 정치를 하루아침에 할 수 있다.’ 하고, 시속의 선비들은 ‘옛 도는 결코 행할 수 없다.’ 하니, 이는 모두 옳지 않습니다. 정치는 요순을 기약하되 사업은 점진적으로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신이 예전에 외람되이 옥당(玉堂)에 있을 때, 항상 요순과 삼대(三代)의 일을 가지고 전하께 아뢰었지만 신의 생각에도 별안간 그 실효를 보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늘 하나의 일을 행하고 내일 또 하나의 일을 행하여 차차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가고자 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정사가 본받을 만합니다. 그때에는 인재를 등용함에 상례(常例)에 얽매이지 않고 어진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을 등용하여 각각 그 재주에 알맞게 하였으니, 지금도 반드시 사람을 가려 벼슬을 내리고 직임을 맡겨 완성하게 하여야만 모든 업적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기묘년(1519, 중종14) 연간에 조광조(趙光祖)가 ‘임금에게는 충성을 다하여 훌륭한 임금이 되게 하고 백성에게는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致君澤民]’는 뜻이 있었지만, 나이 젊은 사류(士類)로서 일을 점진적으로 하지 않아서 소요를 면치 못함으로써 결국 사림(士林)의 화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책임을 맡은 자들이 툭하면 기묘사화를 경계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묘년에 일을 점진적으로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지만, 오늘날처럼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반드시 먼저 실천하시어 근원을 맑게 한 뒤에 다스려야 할 일들을 차례차례 거행하신다면 많은 신하들이 분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나의 몸을 닦으려면 반드시 어진 사람을 높여야 합니다. 이른바 어진 사람을 높인다는 것은 벼슬을 높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 말을 수용하여 정사를 하는 데 써야만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어진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나, 벼슬에 임명하는 것만을 보았을 뿐 그의 말을 수용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참으로 도를 지키는 선비라면 어찌 허례(虛禮) 때문에 나와서 벼슬을 하겠습니까. 또 과거에 급제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재덕(才德)이 있으면 헌관(憲官)으로 등용하는 것이 국가의 상규(常規)인데, 기묘년 이후부터는 그 길이 막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조종(祖宗)의 법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하였다.
~ 사계 김장생 선생, “율곡 이이 선생 행장” 에서
임신년(1572년, 선조5년) 10월에 율곡 이이 선생이 경연에서 아뢰기를,
“임금이 드높은 지위에 앉아 스스로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면 좋은 말이 어디로부터 들어오겠습니까. 반드시 다방면으로 널리 들어서 그중 좋은 것을 가려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신하들이 모두 나의 스승이 되고 여러 가지 좋은 것이 임금의 몸에 모여들어 덕망과 업적이 이로써 높아지고 넓어질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겸허한 마음과 사양하는 모습이 하교(下敎)에 나타나오나, 공론을 따르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을 옳다 하시고 남의 말이 틀렸다고 하는 데 있어서는 도리어 남이 나만 못하다고 여기는 병폐를 가지고 계시니, 신은 삼가 민망스럽게 생각합니다. 삼정승이 아무리 아뢰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성상의 뜻을 거슬러 도리어 임금의 덕에 누가 될까 두려워하는 까닭에 묵묵히 입을 다물고 세월만 보내는 실정입니다. 만일 성상의 뜻이 선치를 해 보려는 데 있다면 대신 또한 반드시 속에 있는 말을 다하고 조정의 신하들도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각각 아뢸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일은 참으로 하기 어렵다. 한 가지 폐단을 고치려 하면 또 한 가지 폐단이 생겨나 그 폐단을 고치기도 전에 도리어 해만 더하게 된다.” 하니, 선생이 아뢰기를, “기강이 서지 않아 인심이 해이하고 관직에 적임자를 가리지 않은 채 구차하게 충당한 사람이 많으므로 녹 먹는 것만 알 뿐 나랏일은 생각하지 않기에, 폐단을 고치라는 명령이 한 번 내려지면 귀찮아서 꺼리는 생각부터 먼저 가져 임금의 명을 받들어 행하지도 않을뿐더러 고의로 폐단을 만들어 내기까지 합니다. 이 때문에 공적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하였다.
얼마 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승진하여 경연에 입시하였다가 아뢰기를,
“오늘날 나라에는 기강이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지금 그대로 인순(因循)한다면 다시는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전하께서 큰 뜻을 분발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시고, 이를 계기로 대신과 백관들을 엄하게 경계하여 일시에 진작시켜 기강을 세워야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강은 법령이나 형벌로써 억지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조정에서 착한 사람을 좋아하고 악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공정히 하여 사사로운 정이 통할 수 없어야만 기강이 서는 것인데, 지금 조정에서는 공(公)이 사(私)를 이기지 못하고 정도(正道)가 사도(邪道)를 이기지 못하니, 어떻게 기강이 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소견은 예로부터 똑같지 않아서 세상일에 어두운 선비는 ‘요순(堯舜)의 정치를 하루아침에 할 수 있다.’ 하고, 시속의 선비들은 ‘옛 도는 결코 행할 수 없다.’ 하니, 이는 모두 옳지 않습니다. 정치는 요순을 기약하되 사업은 점진적으로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신이 예전에 외람되이 옥당(玉堂)에 있을 때, 항상 요순과 삼대(三代)의 일을 가지고 전하께 아뢰었지만 신의 생각에도 별안간 그 실효를 보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늘 하나의 일을 행하고 내일 또 하나의 일을 행하여 차차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가고자 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정사가 본받을 만합니다. 그때에는 인재를 등용함에 상례(常例)에 얽매이지 않고 어진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을 등용하여 각각 그 재주에 알맞게 하였으니, 지금도 반드시 사람을 가려 벼슬을 내리고 직임을 맡겨 완성하게 하여야만 모든 업적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기묘년(1519, 중종14) 연간에 조광조(趙光祖)가 ‘임금에게는 충성을 다하여 훌륭한 임금이 되게 하고 백성에게는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致君澤民]’는 뜻이 있었지만, 나이 젊은 사류(士類)로서 일을 점진적으로 하지 않아서 소요를 면치 못함으로써 결국 사림(士林)의 화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책임을 맡은 자들이 툭하면 기묘사화를 경계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묘년에 일을 점진적으로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지만, 오늘날처럼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반드시 먼저 실천하시어 근원을 맑게 한 뒤에 다스려야 할 일들을 차례차례 거행하신다면 많은 신하들이 분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나의 몸을 닦으려면 반드시 어진 사람을 높여야 합니다. 이른바 어진 사람을 높인다는 것은 벼슬을 높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 말을 수용하여 정사를 하는 데 써야만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어진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나, 벼슬에 임명하는 것만을 보았을 뿐 그의 말을 수용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참으로 도를 지키는 선비라면 어찌 허례(虛禮) 때문에 나와서 벼슬을 하겠습니까. 또 과거에 급제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재덕(才德)이 있으면 헌관(憲官)으로 등용하는 것이 국가의 상규(常規)인데, 기묘년 이후부터는 그 길이 막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조종(祖宗)의 법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하였다.
~ 사계 김장생 선생, “율곡 이이 선생 행장”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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