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식견개발의 삼단계

jookwanlee 2021. 12. 12. 11:07

식견개발의 3단계

 

율곡 이이 선생은 식견(識見)의 개발단계를 그의 율곡전서‘의 등산과 학문’에서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나누어 보았다.

 

성현(聖賢)의 글을 읽고 그 명목(名目)을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성현의 글을 읽어 명목을 이해한 사람이 다시 깊이 생각하고 정밀하게 살피면, 그 명목의 이치가 마음과 눈 사이에 뚜렷이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우칠 것이다. 그러면 성현의 말씀이 과연 나를 속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명목의 이치가 마음과 눈 사이에 뚜렷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사람이 직접 행동하여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긴다면 급기야 직접 그 경지를 밟고 몸소 그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눈으로 보고 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며 이렇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참된 지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세 번째 단계이다.

 

한편, 율곡 선생이 말한 식견의 최고봉인 3단계에 이르는 것을 백강 이경여 선생은 성심(聖心)을 개발하고 실천하도록 성학(聖學)에 정진하는 것으로 보고 다음과 같이 효종대왕에게 말씀하였다.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 데에 오르겠습니까. 성인(聖人)의 극치(極治)라는 것도 결국은 이 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

<1653년 효종4년 7월2일 백강 선생의 상차문(上箚文)에서>

 

아울러 율곡 선생이 말한 식견의 최고봉인 삼단계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면 주의할 점에 대해 정암 조광조 선생과 주자(朱子)가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참고할만하다.

 

“산을 오를 때 산꼭대기에 오르기를 기약하면 꼭대기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산허리에는 이를 수 있다. 산허리에 오르기를 기약한다면 산 아래를 떠나지도 못한 채 멈추고야 말 것이다.(登山, 期至山頂者, 雖不至頂, 可至山腰矣, 若期至山腰, 則不離山底而必止矣)” ~ 조광조

“사람들은 대부분 높은 곳에 오르려 하지만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人多要至高處, 不知自底處).” ~ 주자(朱子)

 

2021.12.12. 素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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