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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써 규제하라

jookwanlee 2021. 11. 30. 12:52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써 규제하라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말이 있다. 이는 겉으로는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되 그 속마음은 짐승과 같아 사람으로서 갖추어야할 도리를 모르며 나아가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하고도 전혀 수치심(羞恥心)을 모른다는 의미이다.

 

그런고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하면 반드시 뭇 사람들을 수치심을 느끼도록 교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말하기를 “법령으로 이끌어가고 형벌로 규제한다면 백성들은 형벌을 모면하려고만 할 뿐 악행에 대한 수치심은 없게 된다. 그러나 덕(德)으로 이끌어가고 예(禮)로써 규제한다면 백성들은 수치심도 생기고 자연히 선(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3장>”라고 하였다.

 

나아가 맹자는 말하기를 “수치심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갖도록 하는 것이 의(義)의 극치이다.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라고 까지 말하였다. 그런즉 의로운 사회를 이루어 국민들이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국민들이 수치심을 알도록 교육하여야 하며 그리하자면 먼저 권력자는 나라를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써 규제해야 할 것이다.

 

약 백일 후 내년 3월9일에는 나라의 운명이 걸린 차기 대통령 선거가 있다. 어떤 후보자가 덕(德)과 예(禮)로써 나라를 이끌고 규제하여 백성들을 일깨우고 혼란과 무질서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해낼 수가 있을 것인가?

 

2021.11.30 素淡

 

* 주(註) : 수오지심(羞惡之心) ~ 이는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에 있는 말로, 《맹자》〈공손추편(公孫丑篇)〉에 나오는데, 그 뜻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으로 즉 ‘수치심’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맹자는 이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수오지심은 옳음의 극치라고 하였다.

 

 

*** 논어(論語) 위정(爲政) 3장 자왈도지이정(子曰道之以政) ***

1절

子曰자왈道之以政도지이정하고齊之以刑제지이형이면民免而無恥민면이무치니라

2절

道之以德도지이덕하고齊之以禮제지이례면有恥且格유치차격이니라

1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법령으로 이끌어가고 형벌로 규제한다면 백성들은 형벌을 모면하려고만 할 뿐 악행에 대한 수치심은 없게 된다.

2절

그러나 德으로 이끌어가고 禮로써 규제한다면 백성들은 수치심도 생기고 자연히 善에 이르

게 될 것이다.”

 

***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이 말은 맹자가 독창적으로 주창한 인성론으로서 '사단설' 또는 '성선설(性善說)'이라고도 한다. 성선설이란 사람의 본성은 '선(善)'이라고 보는 학설이다. 맹자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의지적인 확충작용에 의해 덕성으로 높일 수 있는 단서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다.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이 4단(四端)이며, 그것은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근원을 이룬다. 맹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왕도정치인데, 이 왕도정치가 가능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고 보고 그 마음을 확대하여 나가면 '인·의·예·지'라는 4가지 덕을 완성하게 되고, 다시 이 덕행으로 천하의 백성들을 교화시킴으로써 왕도정치가 실현된다고 보았다.

맹자는 왕도정치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은 다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 왕이 먼저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으면,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가 있다.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를 행하면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 여기서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란,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여,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면 마치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굴림과 같이 아주 쉽게 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본래 있는 것이라며 성선설을 입증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 까닭은 이러하다. 이제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다 놀라고 불쌍한 마음을 가진다.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려 함도 아니며, 마을 사람들과 벗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하여 그러는 까닭도 아니며, 그 원성을 듣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맹자는 사람들은 다 차마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곧 어린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두려워 근심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반드시 달려가 구하려고 하는데, 이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근본 마음이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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