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의리(義理)를 따르라

jookwanlee 2021. 4. 3. 03:54

의리(義理)를 따르라

 

인조 4년 (1626년) 윤 6월 5일, 집의 이경여(李敬輿)가 아뢰기를,

 

“임금이 남의 말을 들을 때에는 그 말의 공(公)과 사(私)만을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에서 나온 발언이라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깊이 미워해야 할 것이고, 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아무리 말이 지나치더라도 곡진하게 따라야 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신 등의 오늘날 논한 것에 대해 공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라고 생각하신다면 드러나게 내치셔야 하고, 공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따르시는 것이 마땅하니, 그 말을 배척하고 그 사람을 묶어놓으면서 끝내 대간이 억제한다는 말과 지록(指鹿) 등의 말로 억누르고야 말겠다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신이 진정 전하의 이 말씀이 오늘날의 일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단지 뒷날의 폐단을 범연하게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천하의 의리(義理)에 대해서 많이 보셨고 전고(前古)의 득실을 두루 관찰하셨을 터인데, 과연 대각(臺閣)이 논사하는 것으로써 다른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고 제멋대로 억제를 하거나 임금을 농락한 화가 빚어진 경우를 보셨습니까. 전하께서 깊이 생각하고 훗날을 걱정하는 뜻이 어찌 대각에만 치밀하시고, 다른 방면에는 소홀하시어 근심해서는 안 될 것을 근심하시고 근심해야 할 것은 근심하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간언을 받아들이면 뒷날이 걱정된다고까지 염려하시는데, 그렇다면 외척을 대우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일에는 폐단이 없다고 보시는 것입니까.

 

삼가 지평 이경의가 피혐한 계사에 대한 비답을 보건대, 준엄하게 배척하시면서 한 마디 한 마디가 갈수록 심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록(指鹿)이란 두 글자를 경솔하게 쓰는 것은 부당하다.’고까지 하교하셨는데, 신은 참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또한 의혹이 없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이미 예사로운 말이 아니니 경솔히 사람에게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 어떻게 유독 대각의 신하에게만은 살펴주지 않고 그 말을 가하신단 말입니까. 대각에 그 말을 쓰는 것은 당연하고 훈척에게 사용하면 오히려 죄가 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이목(耳目)의 신하를 훈척에 비해 훨씬 형편없이 여기시는 것이 됩니다. 권형(權衡)이란 형세상 이쪽이 가벼우면 저쪽이 무겁게 되는 법입니다. 만약 대각의 입을 다물게 하고 척속(戚屬)의 기세를 돋구어 준다면, 이는 국가의 불행이 될 뿐만 아니라 훈척에게도 복이 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원전] 34집 112면 ⓒ 한국고전번역원 홍혁기(역) 1989년

 

○乙巳/執義李敬輿啓曰: "人君聽言之道, 唯辨其公私而已。 涉私而發, 則事雖善, 而深惡焉; 若出於公, 則言雖過, 而曲從焉。 殿下以臣等今日之論, 爲出於公乎? 爲出於私乎? 如以爲私, 則宜加顯黜; 若以爲公, 則亦當捨己而從之, 不宜斥其言, 而縶其人, 終以箝制、指鹿等語, 摧折而後已也。 臣固知殿下此言, 亦非指今日, 特泛稱後弊, 而殿下閱天下之義理多, 歷觀前古得失, 果有以臺閣論事之故, 而致箝制、指鹿之禍者乎? 殿下思深慮遠之意, 何密於臺閣, 而忽於他徑, 憂其不當憂, 而不憂其所當憂也? 從諫用言, 猶慮厥後。 右戚尙恩, 獨無其弊乎? 伏見持平李景義避嫌批答, 嚴辭峻斥, 一節深於一節。 且以指鹿二字, 輕加不當, 爲敎。 臣誠瞿然, 亦不能無惑焉。 殿下旣知非尋常文字, 不宜輕加於人, 則獨何於臺閣之臣, 加之而莫之恤耶? 加諸臺閣, 則以爲當然, 及於勳戚, 則反以爲罪? 然則殿下視耳目之臣, 不及於勳戚遠矣。 權衡之勢, 此輕則彼重。 馴致臺閣結舌, 戚屬增氣, 恐不爲國家之幸, 而抑非勳戚之福也。

[출처: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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