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사람은 곧 천지(天地)의 마음

jookwanlee 2021. 1. 10. 08:29

사람은 곧 천지(天地)의 마음

 

우린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한 것에서 잘 들어나 있고, 또 잠언 423절에 이르기를 생명의 근원이 그의 마음에 있으니 무엇보다 그 마음을 잘 지키고 가꾸라는 말씀이 있다.

 

한편 우리 동양에서도 인간과 그 마음의 소중함을 말하며 잘 가꾸어 가야할 것을 말한 바들이 있어 이에 아울러 생각해본다.

 

()이 있는 자는 다 같이 하늘의 명()을 받아 살고 있으므로 천명(天命)이 자기만의 사유물(私有物)이 아니다. 따라서 군자(君子)의 마음은 확연대공(廓然大公)해서 그가 보는 천하만물(天下萬物)은 무엇 하나 나의 마음이 사랑하지 않음이 없고 또 天下萬事가 나의 직()으로서 마땅히 해서는 안될 일이란 없다.” ~ ‘大學에서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동중서(董仲舒)가 말한 바처럼 그 의()를 바르게 하고, 그 이()를 꾀하지 않고, 그 도()를 밝히되 그 공()을 생각하지 않아야할 것이다.

 

또 사람은 무엇보다 그 마음의 소중한 것인데, 율곡 이이 선생은 천도책(天道策)”에서 말하기를 사람은 또한 곧 천지(天地)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이 또한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도 또한 순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조화(調和)로우면 몸이 조화롭고, 몸이 조화로우면 기운이 조화롭고, 기운이 조화로우면 천지의 조화가 감응(感應)을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이처럼 사람과 그 마음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 하였으니 우리는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을 무엇보다 존중하고 또 그 중심인 마음을 바르게 가꾸며 하여 살아가야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치를 깨달은 백강 이경여 선생은 다음과 같이 우리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함으로 성심(聖心)을 기를 것을 효종대왕에게 말씀한 바가 있어 되새겨 본다.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로 하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君子莫大於正其心).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 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자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텅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가 밝고 의()가 정()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이 이미 굳어져서 어느 것을 취하여도 본원(本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키고 버리는 사이에서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이미 없는 것이니, 어찌 외물(外物)에 대응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고 하였습니다(程子以爲: “天德 王道, 其要只在槿獨”).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임금의 한마음(一心)은 공격을 많이 받는다.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여 그 하나만이라도 받아들여지는 날이면 위망(危亡)이 따른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그 자성(資性)이 밝고 트여 이 마음이 희미한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극치(極致)라는 것도 결국은 이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 중주(中主)의 소강(少康)도 이를 빌려서 다스렸으니, 다니기가 험한 산길에서 애쓰고 초목이 무성한 곳에서 배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위의 말씀은 1653년 효종 4년 백강 이경여 선생이 임금에게 올린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 건의 사항중 하나이다.)

 

2021. 1.10.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