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서(恕)에 대하여

jookwanlee 2019. 11. 6. 23:58

서(恕)에 대하여

 

공자도 서(恕)에 대하여 이르기를 평생을 두고 실천하여야할 도리라고 하였다. 이 恕는 논어의 근본원리이기도 하다. 恕는 자기를 생각하는 것처럼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씨이다. 아울러 나 자신을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하게 대하는 마음씨이기도 하다.

 

恕에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에는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는 뜻도 담겨있다.

 

우리들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큰일 들이 아니다. 이웃에 대한 작은 배려나 보살핌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사람들은 작은 일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 나중에 결과가 눈앞에 닥치고 나서야 후회하곤 한다.

 

결국 남을 위한 배려는 행복하고 성공하는 삶을 위한 필수덕목이다. 남에 대한 배려 없이는 자기 자신도 제대로 성장하고 살아남을 수 없다.

 

 

기도할 수 있기에

 

류태영 박사는 건국대학 부총장을 역임하였고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한 분으로 알려진 학자이다. 류박사는 『기도인생』이란 책을 출간하였다. 머릿말에서 가슴에 닿는 바가 있기에 인용한다.

“나는 시골에 굴러다니는 돌맹이처럼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깊은 산골 마을에서 땅 한 평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눈만 뜨면 산으로 들로 나가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어여삐 여겨 마치 핀셋으로 나를 콕 집어 ‘하나님의 전(殿)’인 교회로 인도하였다. 하나님은 나와 대화를 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특히 나의 마음이 세상 것과 접하기 전인 새벽에 나를 만나기 원하셨다. 나는 아무도 가르지 않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기쁜 마음에 ‘하나님의 전(殿)’으로 향하곤 하였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 그대로, 하나님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새벽마다 당신을 찾는 나에게 손수 가정교사가 되셔서 내 인생을 지도해 주셨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멘토시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고난과 역경을 겪은 것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였지만 기도할 수 있기에 그 어떤 파도도 두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편애하셔서 나만 보호하여 주신 것일까?

아니다. 사람은 편애하지만 하나님은 편애를 모르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모두와 대화를 나누기 원하신다. 우리들의 삶을 지도하기 원하신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거나 외면하기 때문이다.”

 

[출처] (세종대왕 밀성군 백강공)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어디로 가고있나  (0) 2019.11.12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며   (0) 2019.11.08
위대한 인물   (0) 2019.11.06
천하태평의 시대  (0) 2019.11.05
기도하고 행동하라   (0) 2019.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