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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 숙부를 대신하여 지은 백강(白江) 이 상국(李相國)에 대한 제문

jookwanlee 2018. 4. 16. 06:07


  

참의 숙부를 대신하여 지은 백강(白江) 이 상국(李相國)에 대한 제문

 

~ 명제 윤증 선생 지음 : 명재유고 제33/ 제문(祭文) 에서

 

 

아아, 우리 백강 상국공께선 / 惟公白江

한 시대의 노성한 숙덕이셨고 / 一代耇德

두 조정에 상공을 지내셨으니 / 兩朝元輔

나라에 있어서는 중요한 원로 / 國家龜蓍

사림에 있어서는 종주셨다네 / 士林宗主

나이와 덕과 지위 겸유한 데다 / 三尊備有

오복까지 아울러 갖추셨나니 / 五福兼具

시작이 좋았는데 끝도 좋아서 / 善始令終

참으로 짝할 이 별로 없어라 / 允矣寡伍

청렴함과 공손함은 본래의 성품 / 廉恭素性

분명함과 엄준함은 타고난 천성 / 淸峻天賦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의 갖추고 / 溫溫儀表

강직하고 당당한 도량 지녔네 / 侃侃器度

옥이 묻힌 산 절로 윤기 흐르고 / 玉蘊山腴

진주 품은 연못이 아름다운 법 / 珠藏澤嫵

찬란하게 빛났던 성덕군자여 / 有斐君子

세상에 다시 보기 쉽지 않으리 / 世難復覩

젊은 시절 재능이 출중하여서 / 弱齡蜚英

봉황지 연못 위에 날개 폈어라 / 池上鳳羽

그때 마침 혼탁한 군주가 있어 / 適丁昏濁

윤리와 강상이 다 무너졌었지 / 倫常滅斁

몸을 깨끗이 하려고 떠나가면서 / 潔己自疏

미혹과 두려움이 전혀 없었네 / 不惑不懼

공은 그런 뜻을 견결히 지켜 / 厥守貞固

확고한 경지를 수립하였지 / 肇有所樹

도가 다시 흥성하는 시절이 오자 / 中興道泰

뛰어난 인재들이 줄을 이었고 / 俊乂接武

공도 다시 나와서 능력 발휘해 / 才猷奮庸

두터운 신망을 받게 되었지 / 雅望歸注

내직을 맡았을 땐 차분하였고 / 從容省闥

외직에선 편안히 다스렸는데 / 奠釐藩土

판단력과 감식안이 매우 신묘해 / 機神鑑朗

내외에서 모두 다 여유로웠네 / 外內咸裕

저 명승지 부여를 돌아보면은 / 睠彼名區

백마강 강가에 자리했는데 / 白江之滸

뜻을 품고 과감히 물러 나와서 / 志懷勇退

그곳에서 송백지조 굳게 지켰네 / 以保歲暮

한적한 강 대숲에 자리 잡으니 / 水竹靜散

마음이 편안하고 담박하였지 / 襟靈恬素

세상이 공 버린 게 아니었기에 / 世莫公捨

내 실로 마음으로 사모했어라 / 我實心慕

만년에 조정의 부름에 응해 / 晩膺天祿

삼공의 반열에 오르게 됐네 / 百揆三府

그러다가 갑자기 견책을 받아 / 俄承恩譴

찬 변방 험한 섬에 귀양을 갔지 / 氷塞瘴浦

총애와 오욕이 번갈아 와도 / 寵辱迭來

공은 전혀 일희일비하지 않았네 / 公罔喜怖

안색이 변함없이 건강했던 건 / 髭髮無改

신명이 도와주고 보호해서지 / 鬼神扶護

명철한 군주가 선대 뜻 이어 / 聖明繼志

크나큰 은택을 두루 미쳤네 / 霈澤斯溥

공을 다시 영상에 복권시켜서 / 復我袞舄

교화의 책임을 부여했기에 / 畀以陶鑄

세상의 험한 일 모두 겪은 뒤 / 險塗旣盡

대업을 바야흐로 행하게 됐네 / 大業方措

공정함 견지하여 안정시킨 건 / 秉公鎭物

급암과 위징이 남긴 법이지 / 汲魏遺矩

나라에 어진 정승 있다는 것이 / 國有賢相

적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네 / 敵人之怒

초연히 벼슬자리 내어놓고서 / 超乎無位

담담히 초막으로 내려갔었지 / 淡然環堵

임금을 잊지 않는 충심 있는데 / 忠不忘君

의리상 어찌 문을 닫고 지내랴 / 義豈閉戶

임금에게 상소를 자주 올려서 / 囊封亟上

지성스러운 마음을 아뢰었다네 / 款款肺腑

문무 관원 모두에게 모범이 됐고 / 文武模楷

군신 상하 공을 굳게 의지하였지 / 上下倚固

공께서 백 년 동안 장수를 누려 / 謂當百年

길이 명성 떨치리라 생각했는데 / 以永終譽

치사(致仕)하고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 告老未幾

어찌 그리 갑자기 세상 버렸나 / 騎箕何遽

하늘이 공을 급히 데려갔으니 / 天實不憖

이 나라 장차 누굴 의지할거나 / 國將誰怙

공의 목숨 병으로 위태로워도 / 公病已危

한마음 나라 위해 괴로워했네 / 一心猶苦

유소를 남기어 충성 다하니 / 遺疏畢忠

성상의 유지 더욱 애틋하였고 / 益愴聖諭

죽음을 애도하고 예우하는데 / 隱卒崇終

그 애도와 영예가 남달랐었지 / 哀榮異數

조야가 부음 듣고 다 슬퍼한 건 / 朝野驚惋

사적인 인연 때문이 아니었다네 / 非私之故

아아, 보잘것없는 나 같은 이도 / 嗟余無似

그 덕의 도량 안에 놓여 있었지 / 辱在德宇

인척이란 인연으로 연결이 되어 / 憑緣契誼

마침내 공의 우대 크게 받았네 / 遂荷獎遇

나란 사람 편협하고 혼우하기에 / 褊滯昏謬

하나도 취할 만한 능력 없는데 / 一無足取

공이 나를 임금께 천거했으니 / 至玷薦剡

내 실로 공의 명성 그르쳤다네 / 我寔公誤

먼젓번에 묘갈을 돌에 쓰는 일 / 先碣書石

외람되이 부탁을 받았었는데 / 猥蒙見付

간곡히 거절해도 안 되겠기에 / 懇辭不獲

내 노둔한 재주를 다하였으나 / 勉竭拙魯

마음과는 다르게 병이 심해져 / 病與心違

결국에는 그 일을 완성 못했네 / 竟未仰布

유명 간에 저버린 게 부끄러울 뿐 / 幽明愧負

공의 은혜 갚을 길은 전혀 없어라 / 報公無路

고질병 극심한데 못 죽는 이 몸 / 恒疾不死

두 다리는 칼을 씌워 놓은 것 같네 / 兩足如錮

지엄하신 소명이 이어지는데 / 尙勤嚴召

사직을 청하는 게 일이 되었네 / 坐事祈籲

이런 죄를 짓고는 살 수 없으니 / 孼不可活

차라리 잠이 들어 깨지 않기를 / 寐寧無寤

생전에 알아주신 생각 해 보면 / 追惟知照

이리 병든 내 신세 애처롭다네 / 尙矜癃痼

교하(交河)에 솟아 있는 월롱산 아래 / 月籠之下

공이 가서 묻히실 무덤 있는 곳 / 公歸有所

큰 새처럼 거기 가 울지 못하고 / 情慙大鳥

솜 적신 술 들고 가지 못하네 / 迹阻漬絮

그 대신 제문에다 슬픔을 담아 / 緘辭寫哀

한 잔 술 멀리에서 부치옵나니 / 一觴遠寓

밝고 밝아 신령한 영령이시여 / 英靈不昧

부디 흠향하시고 살펴 주소서 / 庶我歆顧

 

[-D001] 참의 숙부 : 윤문거(尹文擧, 1606~1672)를 말한다. 이경여(李敬輿, 1585~1657)가 죽은 해에 윤문거가 이조 참의에 제수되었으므로 참의 숙부라고 한 것이다.

[-D002] 백강(白江) 이 상국(李相國) : 이경여로, 백강은 그의 호이다. 자는 직부(直夫),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D003] 젊은 …… 폈어라 : 봉황지(鳳凰池)는 중서성(中書省)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는 이경여가 1609(광해군1)에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검열(檢閱)이 된 것을 말한다.

[-D004] 그때 …… 없었네 : 광해군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시키는 등 실정을 거듭하자, 이경여는 1619(광해군11)에 벼슬을 버리고 떠나 흥원강(興元江) 가에 우거하였다.

[-D005] 만년에 …… 됐네 : ()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642(인조20)에 이경여는 청나라로 잡혀가 심양에 구류되었다가 그 이듬해 세자와 함께 환국하여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이 된다.

[-D006] 그러다가 …… 갔지 : 1646(인조24)에 이경여가 소현세자빈 강빈(姜嬪)의 사사(賜死)를 반대한 일로 삭탈관직되고 문외출송당하였다가 진도(珍島)에 위리안치되었고, 이어 1648년에 삼수(三水)에 이배(移配)되었다. 여기에서 얼어붙은 찬 변방은 삼수를 말하고 장독(瘴毒)이 있는 험한 섬이란 진도를 가리킨다.

[-D007] 명철한 …… 부여했기에 : 1649(인조27)에 인조가 승하한 뒤 이경여가 아산(牙山)으로 옮겼다가 1650(효종1)에 석방되어 돌아와 영의정에 제수된 것을 말한다.

[-D008] 급암(汲黯)과 위징(魏徵) : 급암은 한 무제(漢武帝) 때의 직간(直諫)으로 이름 높은 신하이고 위징은 당 태종(唐太宗) 때의 현명한 재상이다.

[-D009] 나라에 …… 내려갔었지 : 1651년에 청나라 사신의 압력으로 이경여는 영의정 자리를 떠났고, 1654년에 청나라 사신이 다시 문제 삼자 영중추부사 직을 버리고 물러나 충주(忠州)로 내려갔다.

[-D010] 유소(遺疏)…… 애틋하였고 : 이경여가 1657(효종8)73세를 일기로 명례동(明禮洞) 집에서 졸하자, 자손들이 곧바로 유소를 올렸다. 유소는 임금이 경계해야 할 항목을 들어 설파하는 내용이었는데, 이에 대해 효종은 가르침이 더없이 절실하고 내용이 깊은 데다 간절한 정성이 말에 넘쳐흐르니, 더욱 슬퍼서 마음을 진정할 수 없다. 어찌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孝宗實錄 888

[-D011] 인척이란 …… 받았네 : 이경여의 둘째 아들 이민적(李敏迪)이 숙부인 이정여(李正輿)에게 입양되는데, 그 양어머니가 바로 윤황(尹煌)의 딸이다. 따라서 윤문거는 이민적에게 외삼촌이면서 또 사제지간이었으므로 이경여가 윤문거를 남달리 예우하였다. 陶谷集 卷10 大司憲竹西李公神道碑銘, 韓國文集叢刊 181

[-D012] 공이 …… 그르쳤다네 : 윤문거는 16517월에 동래 부사가 되었다가 그다음 해에 관왜(館倭)의 난동으로 파직된다. 그러나 1653(효종4)에 이경여의 천거로 다시 서용의 명이 내리게 되는데, 여기서는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D013] 큰 새처럼 …… 못하고 : 후한(後漢) 때의 사도(司徒) 양진(楊震)이 간신의 모함을 받은 일로 음독 자살하였는데, 장례를 지내기 10일 전에 큰 새가 날아와 슬피 울다가 안장을 마치자 날아갔다고 한다. 後漢書 卷54 楊震列傳여기서는 병으로 인해 직접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D014] 솜 적신 …… 못하네 : 척계지서(隻鷄漬絮)의 고사이다. 후한 때의 서치(徐穉)는 먼 곳에 문상(問喪)을 갈 때 솜에 술을 적시고 그것으로 구운 닭을 싸 가지고 갔는데, 빈소에 도착해서는 솜을 물에 적셔 술을 만들고 구운 닭과 함께 상에 올린 뒤에 문상을 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53 周黃徐姜申屠列傳이 구절 또한 직접 문상을 하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 | 이기찬 () | 2009